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포럼] 빈과 서울의 신년음악회, 공감과 유감](http://contents.dt.co.kr/images/202202/2022020902102369073001[1].jpg "[포럼] 빈과 서울의 신년음악회, 공감과 유감")
일명 '황금홀'이라 불리는 무지크페어라인에서 열리는데, 매년 달라지는 무대 꽃장식이 신년의 화사함을 한껏 느끼게 합니다. 이 음악회는 입장권 구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났습니다. 전세계에서 비행기를 타고와 관람하겠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입장권을 따로 팔지는 않고 후원금 제도로 운영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월 초 한 방송사에서 방영해준 올해의 빈 신년음악회를 봤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2년째 지휘봉을 잡았더군요. 2년 전 찰스부르크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다리가 불편해 보였는데 황금홀에 선 그의 모습은 건강해 보였습니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팔만 흔드는 모습이 노익장다웠지요. 그러나 연주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는 사뭇 표정이 달랐습니다. 지휘대에서 돌아서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은 열정, 그 자체였으니까요.
해마다 되풀이 되는 똑같은 앙코르곡인데도, 그의 지휘에 맞춰 힘껏 박수를 치는 관객들 역시 신나는 표정이었죠. 마치 그 음악회 하나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 느껴지는 표정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희한합니다. 세계 강대국도 아닌, 유럽의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음악회가 왜 신년의 상징이 되었는지요. 레파토리도 요한 스트라우스 부자의 왈츠곡 위주로 해마다 비슷합니다. 연주하는 빈 필의 단원들은 또 어떤가요? 종신단원제를 고집하는 오케스트라답게 연주자 면면도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보일 정도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의 음악적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해마다 꾸준히 공연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입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왈츠곡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설렘·기대에 잘 어울린다는 이점이 있을 겁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모짜르트, 베토벤, 슈트라우스 가문 등 위대한 음악가들을 길러낸 문화의 도시라는 점이 세계인들 가슴에 뚜렷이 새겨져 있죠.
이웃나라 독일 및 프랑스도 가만있을 수 없을 겁니다. 오스트리아 못지 않을만큼 문화적 배경이 든든한 이 나라들도 몇 년 전부터 자국 출신의 작곡가 작품으로 신년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페라가 유명한 프랑스는 오펜바흐나 비제 등의 곡으로 성악까지 곁들인다고 합니다. 다만 연륜이 짧은 탓에 아직까지는 빈 신년음악회 같은 파급력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계속하다 보면 자국만의 장점들을 찾아낼 거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꾸준한 실행력과 일관성이야말로 롱런의 큰 덕목이란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우리도 매년 예술의전당 및 각 공연장에서 신년음악회를 하고는 있지만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는 신년음악회에 저도 초대를 받았습니다만, 유명성악가 한 두 명만 출연했을 뿐 일관된 주제나 개념은 느껴지지 않는, 일회적 행사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술의전당 경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했는데, 몇몇 인터넷 중계만 있었을 뿐 지상파 방송이 없어서 전 국민이 즐기는 신년행사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지요.
몇 년 전부터 전세계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중음악, 드라마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세계 콩쿠르 석권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음악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요. 국악계도 '범 내려온다' 열풍 이후 찾아 듣는다는 외국인이 많은데 우리는 이 문화적 자산들을 세계에 알리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제안합니다. 우리도 빈 음악회처럼 멋진, 범국민적 신년음악회를 만들어 보자구요. 적어도 새해 첫날 하루만이라도 국가적인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음악회를 만든다면 우리 국민도 신나게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위 공직자들이나 귀빈들보다는 국민 누구나가 즐거워할 음악회를 기획하고, 또 그 공연을 지상파 생중계로 서비스해준다면 해를 거듭하면서 신년음악회는 어느새 전통이 되어 우리네 일상에 스며들 겁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문화자산들을 잘 활용하면 세계인들이 주목할 공연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 테지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신년음악회 말미에 BTS가 출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자신의 노래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가, 국악인들과 어우러지는 멋진 협연을 보여준다면 전세계 팬들이 '모르고 있던 한국예술'에 열광하지 않을까요?
현재 각광받고 있는 '한류'의 물줄기를 잘 활용한다면 유구한 역사의 빈 신년음악회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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