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지방 소멸? 아니 `내 지역구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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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 지방 소멸? 아니 `내 지역구 소멸`


캘리포니아 동부 북북서에서 남남동으로 길게 뻗어 있는 시에라네바다산맥은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산(해발 4418m)과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타호호를 품고 있다. 산맥의 북부는 네바다주와 경계를 이루고 남부는 산맥 너머 동쪽에 그 유명한 데스밸리가 자리 잡고 있다. 데스밸리는 모하비 사막의 일부이기도 하다. 모하비사막 근처 사방 100km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막이 아닌 북부도 거의 비슷하다. 산림이 울창하고 기후가 좋은 타호호수 주변도 거주인구가 희박하다. 단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 연휴나 휴가철에는 이곳도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점이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을 얘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구 4000만 명이 넘는 캘리포니아가 이 산맥을 분수령으로 서쪽과 동쪽이 확연한 인구 분포의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지형적 이유로 인해 산맥 동쪽에는 거주인구가 적은 거겠지만, 자연적 특색의 가치를 지닌 유산에 대해 '거리두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연방 및 주 정부들은 특정 지역을 국립자연공원이나 각종 명목으로 지정해 거주를 제한하거나 인구증가를 막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인구 편재(偏在)가 매우 심한 나라다. 캘리포니아는 서부에 인구가 몰려있다. 미국은 자연적 영향이 크다면, 우리나라는 산업, 교육, 의료, 문화예술 등 인위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 간 인구 차이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부터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지방소멸' '지역소멸'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절반의 성공에 그친 국토균형발전

지방소멸이란 인구가 줄어 후대에 가면 거주민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전국 89개 기초단체 지역을 인구감소 지역으로 분류했다. 전국에 모두 82개 군(郡)단위 자치단체가 있는데, 그 보다 많은 지역이 인구감소에 직면했다니 시(市) 단위 지역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그러니 국토균형발전 대책은 대선주자들의 핵심 공약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만큼 지방소멸에 대한 대응은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고 대선에서 표를 얻는 전략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지난 27·28일 한국지방신문협회가 주관한 지방자치대상 시상식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소멸대응 특별법안 국회발의 보고회에 잇따라 참석해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두 후보의 대책은 대동소이하다. 자치 확대, 지방분권 확대, 지방재정 확충, 교통인프라 고도화, 수도권의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 이전 등을 밝혔다. 예의 이재명 후보는 아직 수도권에 남아 있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지방에 이전하겠다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 추진한 공기업 지방이전 효과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갈수록 퇴색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 수도권에 남아있는 나머지 기관들도 깡그리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수백조 원을 쏟아부은 국토균형발전 프로젝트에서 그나마 성과가 있는 것은 교통인프라의 대대적 구축으로 수도권과 지방간 소통과 교류가 원활해졌다는 것 정도다. 그 외 찾아보기 힘들다. 수도권과 지방간 소득, 의료건강, 교육 수준의 차이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정책을 답습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한계도 있고 실행한다 해도 지방 정체와 수도권 집중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현재 제안되는 많은 국토균형발전대책의 이면에 정치인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원 등의 이해가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지역의 토목건설, 복지, 문화, 교육, 언론 분야 토호세력이 지방분권 확대, SOC 확충, 교육재정 등을 포함한 지방재정 교부금 확대 등을 내세우며 지방소멸을 이슈화하고 있다. 지방이 사라지면 그들의 정치도 이권도 사라진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는 지역문제를 자기들이 정치를 하고 이권 유지를 위한 기반으로 접근한다. 결국은 진정한 지방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전체 지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봐선 안 된다.

◇인구감소와 도시화는 불가역적

이제 국토균형발전은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의 소멸은 인구구조적으로, 지구환경적으로, 인류문화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다. 도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지방소멸 역시 더 심화할 것이다. 이 흐름을 거역할 순 없다. 따라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는 현명하게 수용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구를 감안한 지방 행정조직의 개편, 사라지는 마을을 어떻게 자연으로 복원시키느냐 등의 문제를 생각할 때다.

향후 10년 내 주4일 근무제는 일반화될 것이다. 세컨드 하우스와 주말주택 보유 현상은 가속화한다. 수도권에서 4일 지방에서 3일을 사는 생활패턴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주(主)주소지 외에 부(副)주소지에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인구감소 자치단체에서 별의별 아이디어를 짜내 주민등록인구를 늘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안 해도 된다. 이런 방식의 새로운 착상이 필요하다. 다만 과도기 단계에서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기업유치 및 투자확대와 병행해 다음 두 가지를 꼭 긴급히 실행할 필요는 있다.

◇당장 급한 건 교육과 의료 인프라

의료인프라와 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은 시급하고도 중대한 과제다. 현재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직장, 둘째 교육, 셋째 의료와 관련돼 있다. 따라서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기업투자를 늘리는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방식은 바꿔야 한다. 수도권의 기존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게 하는 제로섬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됐다. 수도권 기업의 이전 정책보다는 국내 기업의 신규투자와 해외 투자를 끌어오는 전략을 펴야 한다.

둘째 수도권에 버금가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수년 동안 매년 평균 15만 명가량이 수도권으로 유입되는데, 20대가 가장 많다. 이는 직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학진학 등 교육이 큰 요인이다. 고교 평준화 이전에 있었던 지방명문 고등학교를 되살리거나 새롭게 육성하고 지방 국립대를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방의 인재가 지방 명문고와 지방 국립대에 진학해 지방의 기업에 취업해도 수도권 이상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갖게 된다면 수도권으로 몰릴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의료인프라다. 아산병원 삼성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병원 같은 최고 수준의 병원을 지방 곳곳에 들여야 한다. 은퇴자들이 수도권을 떠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병원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병원을 자주 찾게 되는데 가까운 데에 믿을 만한 병원이 없다면 큰 걱정이다. 국토교통부의 '2020 국토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의 열악한 의료인프라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병원접근도가 강원 경남 전남 등은 서울의 10분의 1에 그쳤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결국 지방재정 확충 같은 정치인의 정략적 접근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피부에 닿는 부족한 점을 찾아 메워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지리산 부근 지역은 차라리 비워두자

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국토 발전계획에 깊숙이 관여해온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 곽영훈 박사(사람과환경그룹 대표)는 국토개발에 녹지축과 활성축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곽 박사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쭉 이은 선을 녹지축으로 삼고 신의주 동쪽에서부터 평양을 지나 서울과 대전 여수를 잇는 활성축을 제안했다. 두 축은 서울에서 교차한다. 휴전선 이북은 유보하고 이 녹지축과 활성축을 기본으로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자는 제안이었다. 그 안에 따라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가 기획되고 실행됐다.

국토를 대하는 시각을 녹지축과 활성축으로 나눠봐야 한다. 농촌 인구가 급격히 고령화돼 현 거주민들이 어쩌면 마지막 거주 세대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군 단위 지역은 소멸 위기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귀촌 귀농이 활발하다 해도 한계가 있다. 많은 지역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無人) 지대가 될 것이다. 비어간다는 의미다. 되돌릴 수 없으면 차라리 역발상으로 추세를 이용하는 것도 해법이다. 행정단위를 여러 군을 묶어 하나로 하고 사람이 떠난 마을과 지역은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자연성을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전북 전남 경남 3개 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1915m) 부근을 비우는 방향으로 가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은 헤아릴 수 없는 자연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이 걸쳐 있는 8개 행정구역 가운데 진주를 제외하면 모두 인구 소멸 우려지역이다. 억지로 이들 지역에 인구를 늘리거나 이주민 유입 정책을 펴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을 회복토록 함으로써 자연적 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자는 제안이다. 지역을 비워두는 것도 한 전략이라는 말이다.

그리 되면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산맥 너머처럼 일주일 중 3일은 휴양인구가 머무르며 자연적 삶을 즐기는 명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내 지역구 소멸'을 반대하는 지역 정치인들과 토호세력들인데, 국민 저변의 사회적 합의로 설득하고 극복하면 될 것이다. 이제 '지방 소멸'은 새로운 개념의 '지역의 탄생'과 '자연의 귀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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