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대범과 대충 사이… 尹 철학까지 구멍

당내 경쟁서 센 발언 늘린 尹…'대범'함인가
정제 덜 된 '대충' 발언이 긁어 부스럼 자초
철학도 '대충'?…증세론 끌려간 경제정책관
'자유·약탈' 다른 "文 정책事故, 黨원론집착"
'따뜻한 아메리카노'같은 일관성 상실 위험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한기호의 정치박박] 대범과 대충 사이… 尹 철학까지 구멍
지난 10월 14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경기도당 주요당직자 간담회'에서 당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사진) 전 검찰총장이 최근 같은 국민의힘 대권경쟁자들을 겨냥 "'참 핍박받는 정말 훌륭한 검사'라던 우리 당의 선배들이 제가 정치권에 오니까 핍박이 갑지기 의혹으로 바뀐다"며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당이 없어지는 게 낫다"고 발언해 당 안팎을 술렁케 했다. 실체 불분명한 여권발(發) 의혹도 연상퀴즈 하듯 엮어서 던지거나, 이중잣대까지 불사하는 당내 경쟁자들이 야속했다는 취지는 알 만하다. 그러나 '당 해체'로 압축돼 확산 된 발언은 진의를 떠나 "지나치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당내에서 잇따랐다. 두터운 당내 지지에 감사를 보내도 모자랄 판에 문을 닫니 마니 하는 건 신인으로서 취할 화법이 아닌 것으로도 보였다.

전쟁과도 같은 정치판에서 피아(彼我)구분의 중요성, 세칭 '원팀 정신'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불만은 충분히 전달 됐을 것이다. 앞서의 '일주일간 120시간 바짝 근로'와 '부정식품 선택할 자유' 발언, '손발노동은 아프리카에서', '여자분들도 점 보고 다녀' 발언 논란처럼 표현 그 자체로 거부감을 일으킨 실언이 늘어난 셈이다. 매번 긁어 부스럼 식이다. 대선주자로서 '공격에 위축되지 말라'거나, '대범'하게 행동하라는 주변 조언으로 나타난 결과일 수는 있다. 하지만 실상은 윤 전 총장이 '대충' 던진 한마디가 캠프와 조력자들에게 열마디를 쏟아내게 만드는 패턴으로 보인다. 무절제와 다른 무정제가 원인 같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고, 본인의 소재파악과 듣는 사람의 눈높이 등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면 군더더기가 적고 본질에 가까운 어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추석 연휴 예능에서 선보였던 '윤석열 표 계란말이'처럼 말이다. 일관성도 자연히 챙길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윤 전 총장의 철학에서까지 균열이 느껴지는 사례가 있다. 경제정책관이 대표적이다. 지난 13일 본경선 2차 TV토론에서 윤 전 총장은 '코로나19와 엄청나게 빠른 고령화로 복지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인데도 증세에 반대했다'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기 싸움에서 졌다. 증세를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할" 대상 정도로 언급할 뿐 문재인 정권보다 복지 지출을 '늘리냐 줄이냐'는 양자택일 식 물음에도 윤 전 총장은 '줄이겠다'는 한마디를 못 했다. 현 정권에서 경제악화에도 '추경 중독'과 더불어 본예산 규모가 400조원대에서 해마다 급증, 600조원대까지 치솟는데도 반대 방향은커녕 '나눠주는 방법' 논의에만 몰두했다.

국가 채무 때문에 "국가 부채도 안 늘리고 세금도 안 늘릴 수 없다"는 유 전 의원에게 윤 전 총장은 "(그럴 경우) 증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부가가치세 인상에 반대했는데 뭘 증세하냐'는 추궁엔 "소득세라든가 법인세라든가, 여러 가지 간접세들"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2차 경선 3차 TV토론에서 유 전 의원의 부가세 인상론을 때리며 자영업자 부담 가중을 우려했던 그로부터 상상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출마선언으로 일갈했던 "국민 재산 약탈"은 '부동산세'와 '대장동'에 한정되는 이야기였나. 토론 당일 유력 경제지가 소득세·법인세 인상 거론을 꼬집자 "절대 당장 증세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선 것은 윤 전 총장이 아닌 캠프 관계자였다.

지난 7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은 "법인이든 개인이든 경제주체에게 세금이란 건 경제활동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라며 "(세금을) 걷어서 (도로) 나눠줄 거면 일반적으로 안 걷는 게 제일 좋다"고 했었다. 경제지 인터뷰에선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가 자신의 신념과 '정확히 같다'고 밝혔기도 하다. 만 2년 전인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소개한 것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2차 경선 토론회 국면에서 윤 전 총장은 유 전 의원이 조세 제도와 관련, 선택할 자유에서 발췌한 부의 소득세(음소득세)를 지향하는지 묻자 잘 모르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책과 신념을 같이 하는 게 아니었냐'는 지적에도 뒤늦게 검사로서 단속 분야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기억한다. 윤 전 총장은 또 14일 경기도 현지에서 별안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건 맞지만, 우리 당이 그동안 너무 원론에만 집착한 게 아닌가"라며 복지정책에 무게를 실었다. 석달 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원론'에 집중한 "자유주의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대화를 나눈 건 누구였나. 같은 날 페이스북 글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겠다고 국민을 세금의 늪에 빠뜨렸다"며 "문재인 정권의 반복되는 정책 사고(事故)"라고 지적한 대목도 어딘지 공허하다. 악재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도 그저 '사고'로 보인다면 원인이나 실체를 추적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표현 수위를 낮춘 게 아닌가. 지도자 지망생에게 '함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이나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기대하는 게 국민 여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