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MIT·초전도 연구 30년 한우물 "확고한 꿈 있어야 실패도 극복"

1972년 '노벨 물리학상' 받은 쿠퍼 박사가 미래 롤모델
2005년 금속-부도체 전이현상 56년만에 실험으로 입증
고온·상온·저온서 초전도현상 발생원리 규명 학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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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D사이언스] MIT·초전도 연구 30년 한우물 "확고한 꿈 있어야 실패도 극복"
김현탁 박사



이준기의 D사이언스

김현탁 ETRI 박사


지난해 7월 정년 퇴직 이후에도 매일 같이 연구실로 출근한다. 지금은 전문연구위원 신분으로 바꿔 주 2∼3회 출근하면 되지만, 지난 30년 간의 연구 루트를 잃지 않기 위해 연구실 문을 가장 먼저 연다. 오는 12월 종료되는 연구과제도 모두 마무리한 상황이다.

김현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박사는 내년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연구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김 박사는 국내외 물리학계를 몇 차례 떠들썩하게 한 '풍운아'와 같은 과학자다.

현대 물리학 난제로 꼽혀 왔던 'MIT(금속-부도체 전이) 현상'을 실험으로 규명하고, 이 분야를 외곬으로 파고들어 최근에는 초전도 현상이 저온, 상온, 고온에서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새 이론을 제시하는 등 고집스럽게 연구했다.

김 박사는 "한 눈 팔지 않고 MIT, 초전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를 하겠다는 집념 하나로 30년 간 연구실을 지켰다"며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MIT 연구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고, 이 분야에서 깊이 있는 연구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MIT, 초전도 분야에서 제시된 기존 이론이 완벽하지 않거나, 미완성된 것을 끈질기게 찾아내 이를 나만의 아이디어와 연구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우리 몸의 심장처럼 중요한 것을 찾아 연구해야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고, 이를 해 내겠다는 꿈이 있어야 연구 도중에 맞닿는 실패와 시행착오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과학에 푹 빠져 물리학자 꿈 키워=김 박사는 어릴 적 위인전을 읽으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특히 물리와 수학을 매우 잘 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 때마다 최고 점수를 받았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로 잘 했냐"고 묻자, 그는 "일반적으로 물리와 수학을 잘 하는 학생보다 자신이 더 잘했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물리와 수학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인슈타인, 뉴턴 등과 같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대학 전공을 물리학으로 선택하면서 김 박사는 비로소 물리학자로 성장하기 위한 여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초전도 분야를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정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1972년 초전도 현상을 현대적 이론으로 규명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쿠퍼 박사의 강연을 듣고, 그를 미래의 '롤 모델'이자 '존경하는 과학자'로 정한 뒤 더욱 물리학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고온 초전도체 관련 연구를 한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저온 초전도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3년 만에 일본 쯔쿠바 대학의 전임 교수가 됐다.

그는 "당시 물리학 분야에서 초전도체가 매우 핫한 이슈로, 일본에서는 저온 초전도체 연구를 했다"면서 "기초연구를 중요시하는 일본 연구문화 속에서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지난 30년 동안 '초전도'라는 한 분야만 연구하는 물리학자로 연구인생을 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금속-절연체 전이(MIT), '한 우물 연구인생'=김 박사의 연구 영역은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초전도체' 한 분야였다. 고온 초전도체에 이어 저온 초전도체로 박사학위를 받아 1998년 ETRI 초전도 연구팀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 번도 초전도 연구 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조차 둔 적이 없었다. 국내에서 초전도 연구를 하고 싶은 생각에 선배가 추천해 준 곳이 지금껏 몸담은 ETRI였다.

김 박사는 "주로 응용연구를 하는 ETRI에서 초전도 연구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지원하게 됐고, 연구소 차원의 지원 덕분에 '초전도 연구'라는 한 우물만 팔 수 있었다"며 "이 모든 것이 정부와 역대 기관장을 비롯해 동료 선후배 연구자들의 각별한 애정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의 연구 방식은 독특하다. 해외 유수의 논문에서 게재된 실험 데이터에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접목해 이론적으로 규명한 후,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적은 인력과 연구비를 들여 연구를 할 수 있고, 단기간 내 새로운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그가 2006년 세계 물리학계를 들썩이게 했던 금속-절연체 전이(MIT)의 매커니즘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규명한 연구성과도 이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 물리학 난제 'MIT현상' 세계 첫 규명과 잇딴 연구성과 '결실'=절연체(부도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인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부도체가 갑자기 금속이 되는 이른바 'MIT(Metal-Insulator Transition) 현상'을 2005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세계 물리학계를 발칵 뒤짚어 놨다. 기존 상식을 깨고 절연체가 금속이 되고, 금속이 절연체로 전이되는 현상을 실험으로 입증해 낸 것이다.

MIT 현상은 1936년 위그너라는 학자가 예언하고, 1949년 모트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가 MIT 현상이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고 발표한 이래 실험적 증명 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김 박사의 연구로 인해 현대 물리학의 오랜 숙원인 MIT 현상이 56년 만에 규명된 셈이다.

김 박사는 "MIT 현상은 오랫동안 고체물리학 분야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며 "금속에서 두 개의 전자가 서로 밀어내는 쿨롱에너지가 매우 크면 물질의 구조적 변화 없이 갑자기 모트 절연체로 전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쁨도 잠시, 김 박사에게 시련이 닥쳤다. 일부에서 그의 연구성과가 부풀려졌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의 연구를 폄훼하려는 의도였다. 얼마 안 돼 그 의혹은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그는 오로지 연구성과로 이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각오로 밤낮과 주말을 잊고 연구에 매진한 끝에 드디어 2007년 3대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사이언스'지에 자신이 규명한 MIT 현상을 재입증하는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김 박사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MIT 현상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매달려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스스로 지속적으로 찾아 연구를 한 단계씩 발전시킨 결과가 꽃을 피우게 된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또 한번의 사고(?)…110년 만에 '초전도 현상' 새 이론 제시=김 박사는 최근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1911년 발견 이후 원리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던 초전도 현상을 고온부터 상온, 저온에 이르기까지 설명할 수 있는 새 이론을 제시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초전도는 특정 온도나 압력에서 저항이 '0(제로)'가 되는 현상으로, 이 현상을 이용하면 에너지 손실을 대폭 줄여 양자컴퓨터, 시속 1000㎞를 구현하는 초고속 진공튜브 열차(하이퍼루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한 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초전도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온전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1957년 저온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발표된 'BCS(Bardeen·Cooper·Schrieffer)이론' 마저 공식이 완전하지 못하고, 고온이나 상온은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BCS 이론은 존 바딘,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 등 세 사람이 초전도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확립한 것으로, 세 사람은 이 이론을 제시한 공로로 197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김 박사가 제시한 이론은 저온, 상온, 고온 등 온도에 상관없이 특정 온도와 압력 조건에 따라 물질의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온도가 달라지는 것을 처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온도 범위나 조건에서만 설명이 가능했던 기존 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과학자로 물리학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래 고온 초전도 현상을 규명해 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30년 간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해 온 끝에 결실을 맺게 됐다"고 평가했다.



◇"꿈이 있어야 실패 극복할 수 있어"=김 박사는 꿈이 있었기에 여러 어려움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연구성과가 부풀리기 의혹에 휘말렸을 때도, 자신의 연구를 통해 인류를 발전시키겠다는 꿈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MIT, 초전도 분야 말고 다른 연구 분야엔 한 눈도 안 팔았다.

김 박사는 "연구비를 받기 어려운 시절에도 연구비를 쉽게 받을 수 있는 분야는 쳐다 보지 않고, 줄곧 MIT, 초전도 분야 연구에만 매달렸다"면서 "그렇기에 글로벌 연구그룹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논문도 꾸준히 발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한 확고한 꿈이 있어야 하고, 국가는 꿈을 가진 연구자와 심장처럼 중요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를 찾아 성과가 나올 때 까지 중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사진=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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