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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건국설화·군주의 맹우… 한민족,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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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크리스토퍼 벡위드 교수 제기
저서 '실크로드의 제국들' 높은 평가
동명성왕 주몽의 건국 설화에 주목
하늘의 신과 강의 신 결합으로 탄생
오이·마리·협부 등 심복과 동거동락
중앙유라시아-북방 통해 생긴 문명
한민족과 밀접하게 연결된 점 불변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건국설화·군주의 맹우… 한민족,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일원
한반도의 우리 민족과 북방 민족은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러스트=윤소영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건국설화·군주의 맹우… 한민족,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일원
서로의 피를 잔에 떨어뜨려 나눠 마시는 맹우를 묘사한 스키타이 황금상.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건국설화·군주의 맹우… 한민족,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일원
백위드의 2009년판 저서 표지.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⑤ 중앙亞, 과거를 넘어 미래로 -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론과 한반도(2)


한반도가 중앙유라시아 문화, 즉 이른바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자명하다. 단지 그 정도와 방식에 관한 이견이 있을 뿐이다. 많은 학자가 고고학 발굴을 통해 출토된 유물을 연구하거나 역사 문헌을 분석함으로써 한반도와 '북방' 문명의 교류를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발견과 주장들을 아우르는 설명의 틀을 제공할 이론적 토대가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2014년 한국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Beckwith)의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론"은 매우 흥미롭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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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학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연구를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고고학자들은 '빗살무늬토기'를 들어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과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시베리아 문명과 연계되어 있다고 본다. 고대 신라 시대에 대거 조성된 목관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를 두고 흑해 북안에서 비롯하여 중앙유라시아 곳곳에서 발견되는 쿠르간(Kurgan) 문화의 영향이 한반도까지 미친 것은 아닌가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일본의 요시미즈 쯔네요(由水常雄) 같은 이는 신라의 장신구나 황금 제품 등을 분석하여 그리스-로마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이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접근법은 유전학을 통한 연구들이다. 인간의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동양인, 즉 몽골로이드가 갖는 독특한 ab(3)st라는 돌연변이 감마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몽골초원 북부 바이칼 호수 근처 야쿠트(Yakut)나 부리야트(Buryat)인들과 한국인의 DNA가 거의 같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한국인의 뿌리를 바이칼 호수 근처로 보기도 한다.

반면에 유사한 방식으로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Y염색체의 돌연변이를 분석해보니 북방보다는 동남아시아 쪽 유전자를 한민족이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민족의 뿌리를 남방에서 찾는 이들 가운데 언어학자들도 있다. 한국어와 남인도 드라비다어(Dravida語/Dravidian) 또는 타밀어(Tamil語) 사이 언어문화적 상관성이 있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다. 벼농사와 녹차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남방기원설을 지지하기도 한다. 특히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인도 출신 허황옥(許黃玉)과 김수로왕(金首露王)의 결혼 이야기나, 처용설화를 통해 한반도와 남방 문화와의 교류를 재구성해보려는 노력도 있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이러한 다양한 과학 분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단순히 '우리 민족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찾는 것이 과연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세계 문화·문명의 주류와 연결되고 교류해왔는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가 전공하고 있는 중앙유라아시아-북방 지역에서 근래 제기된 새로운 문화 이론인 '중앙유라시아 문화 복합체론'을 소개하고, 우리 민족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이 세계적인 문화의 흐름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앙유라시아 문화 복합체(Central-Eurasian Culture Complex)'라는 개념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Beckwith)가 2009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된 '실크로드의 제국들(The Empires of the Silk Road)'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라는 제목으로 출간)이라는 책에서 제기한 이론이다. 이 도서는 같은 해 미국 출판협회(AAP) 세계사 및 전기/자서전 부문 우수 전문 및 학술도서로 선정되었을 만큼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인 벡위드 교수는 필자가 박사과정을 마친 인디애나 대학(Indiana University) 중앙유라시아학과(Central Eurasian Studies) 교수 중의 한 명이다. 같은 학과였지만 벡위드 교수가 언어학 전공이었기 때문에 역사학 전공이었던 필자가 벡위드 교수 수업을 수강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캠퍼스에서 가끔씩 마주칠 때마다 벡위드 교수는 수업이 끝나도 강의실 복도에서 학생들과 열렬히 토론을 나누던 열정적인 모습의 소유자였다. 사실 사학 전공자인 필자는 벡위드 교수가 사용하는 역사언어학적 접근법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가 2004년 출간한 '고구려어, 일본어의 대륙적 친족어(Koguro, The Language of Japan's Continental Relatives)'가 많은 문제점을 보이며 학계의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필자는 평소 다소 색안경을 끼고 그의 연구를 바라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한반도와 북방문화의 연결고리에 천착하면서, 벡위드 교수의 '실크로드의 제국들'이 갖는 단점보다는 장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벡위드 교수는 탁월한 언어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세계 각지의 고전 텍스트를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른바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Central Eurasian Culture Complex)'를 설정한다. 그에 따르면 '중앙유라시아 문화 복합체'의 문화적 원형 가운데 크게 두 가지가 세계 여러 문명에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첫째, 각 집단의 건국설화에 보이는 보편적 구조, 그리고 둘째, 군주와 그의 맹우(盟友) 집단의 운용이다.

사실 건국설화의 모티프(motif)에 대해서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상호 비교분석을 해왔다. 그러나 벡위드 교수만큼 유라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스케일을 보인 적은 없었다. 군주와 피의 맹세로 뭉쳐진 전우들의 집단이 사회제도화되었다는 주장도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매우 참신한 주장이다. 무엇보다 그는 중앙유라시아 초원에서 생성된 고도의 문화 복합체가 유럽, 중동 및 아시아 각지의 문명보다 시대적으로 앞설 뿐 아니라 그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벡위드 교수가 주창한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에 우리 민족도 중요한 일부분이었다는 증거가 목격된다는 사실이다. 먼저 벡위드가 주장한 건국설화의 보편적 구조에 관해 살펴보면, 그는 세계 각지의 건국설화를 관통하는 12가지 핵심요소를 지적한다. 각 민족의 창시자들은 대체로 하늘의 신과 강의 여신, 혹은 강의 신의 딸이 혼인하여 태어나는 등 신비한 출생과정을 거친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불의한 왕의 음모로 죽음의 위기에 놓이나 야생 짐승의 보호를 받아 구조되고, 이후 자라서 말타기와 활쏘기의 달인이 된다. 불의한 왕의 휘하에서 고난을 겪으나, 결국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규합하여 불의한 왕을 무너뜨리고 왕권을 확보한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스키타이 및 흉노 제국 뿐만 아니라 오손, 돌궐, 그리고 중국의 주(周)나라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벡위드는 우리 민족, 특히 고구려의 건국 설화에 주목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이는 고구려나 '논형(論衡)'에 보이는 부여(扶餘)―혹은 고구려의 전신격인 졸본 또는 졸본(卒本) 또는 홀본부여(忽本扶餘)―의 건국 신화 역시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의 건국 모티프가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동명성왕 주몽의 탄생설화는 난생(卵生) 부분을 제외하면 하늘의 신(해모수)와 강의 신(하백의 딸 유화)의 결합, 야생동물들의 보호를 받는 점, 주몽이 백발백중의 활쏘기 실력을 가졌던 점, 신령한 힘의 도움으로 살해 위협을 빠져나와 왕국을 창립한 점 등 앞에서 언급한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의 건국설화적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한편 벡위드가 언급한 유라시아 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치 문화적 현상의 두 번째 요소는 군주와 그를 둘러싼 맹우(盟友) 집단의 존재이다. 벡위드는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가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언급한 '코미타투스(Comitatu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군주의 친위집단을 지칭하는데, "사회정치적-종교적 이상형으로서의 영웅적 군주와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기로 맹세한 주군의 친구들로 구성된 전투 부대"로 이를 정의한다. 그리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잔에 떨어뜨려 함께 마시는 스키타이의 서약 풍습이나 한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음을 택한 순장(殉葬)의 관습 등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았다. 벡위드는 이러한 풍습이 히타이트, 페르시아, 스키타이, 중앙아시아, 흉노, 게르만, 고구려, 일본, 투르크, 소그드, 티벳, 러시아(루스), 거란, 몽골 등 곳곳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투르크족이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난 이슬람 압바스 칼리프조에서도 중요한 정치제도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단지 중국에서는 그 형태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날 한시에 함께 죽음을 맹세한다'는 문구는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처럼 들린다. 다름 아닌 유비, 관우, 장비의 '삼국지'의 도원결의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원결의'의 장면은 명(明) 나라 시대 나관중(羅貫中)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극화된 장면이다. 그러나 삼국 시대 직후인 서진(西晉) 시기 진수(陳壽)가 편찬한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에도 유비, 관우, 장비의 맹약(盟約)은 사실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한 침상에서 잠을 잤고 형제에게 하듯 은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나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위해 "사람을 움직여 자리를 만들었으며 하루종일 시종을 들며 서있었고, 유비를 따라 돌아다니되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앞서 언급한 '코미타투스' 즉 맹우(盟友)를 연상시킨다. 특히 관우가 일시적으로 조조의 휘하에 있었을 때 유비의 "깊은 은덕을 받았고 함께 죽기를 맹세하여 그것을 저버릴 수 없다"는 고백은 전형적인 중앙유라시아의 '코미타투스'의 모습이다.

스키타이의 풍습처럼 피를 나누어 마시는 혈맹의 서약 역시 한나라 시기 중국에서 성행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한 고조 유방(劉邦)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흰 말을 베어 그 피를 나누어 마시며 유씨 이외 다른 성씨가 왕위에 오르면 함께 힘을 합쳐 공격하도록 약조를 맺었다. 같은 방식으로 한나라 사신단과 흉노 호한야(呼韓邪) 선우(單于)가 동맹조약을 맺을 때 백마의 피를 나누어 마셨다. 이 때에 쓰인 음료잔은 다름아닌 흉노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한 월지(月氏) 왕의 두개골로 만든 잔이었다. 얼핏 보면 스키타이나 흉노의 풍습으로 보이는 것들이 중국 문화의 정수로 여겨지는 한나라 시기 정치 관습에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군주의 맹우로서 항상 곁에서 동거동락하던 심복의 존재는 고구려 건국설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구려의 창시자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그의 벗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부(陜父)와 함께 탈출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동부여에 남겨진 주몽의 아들 유리(類利)가 그의 아버지가 징표로 남긴 부러진 검의 일부분을 찾아 고구려로 떠날 때 동행한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행(都行) 역시 생사고락을 약속한 맹우들이었다.

신라시대 화랑도 이러한 코미타투스, 즉 맹우 집단과 다르지 않다. 신라 진흥왕 또는 진평왕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의 신라 화랑들은 앞서 한 해 전에 이미 학업에 전념하기로 '맹세'하고도 또 3년 이후 충도(忠道)를 행할 것을 또다시 '맹세'하고 있다. 이들 화랑이 누구였는지, 과연 이들의 맹세가 실현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하늘 앞에서 맹세하고 이를 돌에 새기던 젊은 전사들의 친우 집단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던 사회적 풍습이었다.

우리 민족은 건국설화 뿐 아니라 군주의 맹우라는 사회-문화적 제도가 있었다는 측면에서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의 일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벡위드의 연구는 한반도가 '북방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세계 역사와도 잇닿아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앞으로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이론을 넘어서는 어떠한 역사-사회 이론이 나타날지라도 중앙유라시아-북방 지역을 통해 구성된 인류 문명과 우리 민족의 문화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건국설화·군주의 맹우… 한민족,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 일원
이광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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