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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파괴자이자 건설자, 제국의 영웅들… `인류문명 교류의 場`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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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떨게한 파괴적 정복자지만
몽골제국의 종교적인 관용정책
자유·평화공존 美헌법정신에 영감
당시 제국에 모인 세계 기술자들
혁신적인 기계장치·물건들 생산
동서양 문화교류의 보고인 셈
중앙아시아의 격동적인 역사
한반도 미래개척 새 원동력 기대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파괴자이자 건설자, 제국의 영웅들… `인류문명 교류의 場` 만들다
사마르칸트 비비하늠 모스크 입구 정면.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파괴자이자 건설자, 제국의 영웅들… `인류문명 교류의 場` 만들다
세계적인 정복자 칭기스칸(왼쪽)과 중앙아시아 민족영웅으로 추앙되는 아미르 티무르. 일러스트=윤소영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⑤ 중앙亞, 과거를 넘어 미래로 - 칭기스칸과 아미르 티무르(1)


"중앙아시아: 과거를 넘어 미래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갖는 한 가지 바람은 독자들이 중앙아시아를 더욱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느꼈으면 하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생각보다 우리의 관념체계 형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앙아시아와 한반도의 연결 고리를 하나하나씩 발견해가면서, 우리의 세계관도 넓어지고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중앙아시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는 역시 누구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정복자 칭기스칸(Chinggis Khan, 한자로 成吉思汗; 1162~1227)과 그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민족영웅으로 추앙되는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1336~1405), 또는 한국에서 통칭하기로는 티무르(Timur)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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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컬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긴 항해 내내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Il Milione)'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생생하게 묘사한 몽골제국의 창시자 칭기스칸과 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건국한 차가타이 칸국의 실질적 계승자 티무르가 세계 사회에서, 특히 유럽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미처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를 통해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눈을 뜬 유럽은 16세기부터 심화된 오스만의 침공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슬람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1529년과 1685년 오스만 투르크의 비엔나 포위는 유럽 사회에 큰 충격과 함께 동양(Orient)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7세기에 이슬람과 동양을 다룬 서적들이 특히 많이 출간되었고, 칭기스칸과 티무르도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걸쳐 다양한 서적들을 통해 유럽 독자들에 소개되었다.

이 가운데 단연 프랑스의 학자 프랑수아 뻬띠-들라크루와(Francois Petis de la Croix: 1653-1713)의 연구가 결정적이었다. 아랍어 통역이던 아버지를 따라 시리아, 페르시아 및 오스만 투르크 영토를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아랍어, 페르시아어, 투르크어와 아르메니아어까지 섭렵한 그는 1710년 그의 부친의 글을 편집하여 '고대 몽골과 타타르의 최초의 황제, 위대한 칭기스칸의 역사(Histoire du Grand Genghizcan, Premier Empereur des Anciens Mongols et Tartares)'를 출판했다.

또한 샤라프 앗딘 야즈디(Sharaf al-Din Yazdi)의 '자파르나마(Zafarnama)'를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이 책은 뻬띠-들라크루와 사망 후 9년이 지난 1722년에 '위대한 테멀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티무르 벡의 역사(Histoire de Timur-Bec, connu sous le Nom du Grand Tamerlan)'의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뻬띠-들라쿠르아 책들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렸고, 영어로도 번역되어 칭기스칸의 전기는 1722년, 티무르의 것은 1723년 각각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뻬띠-들라쿠르아가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칭기스칸과 티무르의 유럽식 명칭이 지금도 그의 표기법을 따른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학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칭기스칸'이나 '티무르'라고 하면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영어로 칭기스칸은 '겐기스칸(Genghis Khan)'으로 아미르 티무르는 '테멀레인(Tamerlane)'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발음법은 모두 뻬띠-들라쿠르아의 표기법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 관습으로 굳어진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Genghis Khan은 본래 프랑스 발음으로는 '장기스칸'으로 발음이 되었고 이는 원래 발음인 칭기스칸에 가깝다. '테멀레인'은 티무르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페르시아어로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뜻의 "티무리랑(Timur-i Lang)"을 옮기는 과정에서 출현한 표기 방식이다.

문제는 뻬티-들라크루아의 연구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이미 중앙유라시아의 두 정복자 칭기스칸과 아미르 티무르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이 고착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18세기 말 6권의 대작 '로마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을 쓴 영국의 역사학자 기본(Gibbon)은 칭기스칸의 표기법으로 뻬티-들라크루아의 '겐기스칸'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1697년에 출간된 프랑스학자 바르텔레미 데르블로(Barthelemy d'Herbelot)의 '동방의 도서관 혹은 세계백과(Bibliotheque Orientale ou dictionnaire universel)'의 표기법인 '젠기스(Zenghis)'를 선호했다. 그는 데르블로의 책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는데, 몽골 군대가 메르브, 니샤푸르, 헤라트를 어떻게 철저하게 파괴했고 그 결과 434만 7000 명이나 되는 무슬림이 사망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칭기스칸의 이미지는 이미 유럽학자들 사이에서 '파괴자'의 그것이었다.

티무르의 경우도 이와 유사했다. 시리아의 다마스커스(Damascus) 태생으로 티무르의 시리아 원정을 목격한 이븐 아랍샤(Ibn Arabshah)가 1440년에 쓴 '티무르의 파괴라는 운명의 경이로움(Aja'ib al-Maqdur fi Nawa'ib al-Timur)'은 1636년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티무르가 정복과정에서 저지른 파괴와 학살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10만 명의 인도 포로를 죽이거나 7만 명의 머리로 두개골 탑을 만들었다는 '자파르나마(Zafarnama)'의 뻬띠-들라크루와 프랑스어 번역만으로도 충분히 티무르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칭기스칸과 아미르 티무르의 파괴적인 정복자로서의 이미지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더욱 극대화되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잭 웨더포드(Jack Weatherford) 역시 2004년 쓴 '칭기스칸과 근대 사회 만들기(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한국어판 제목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10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몽테스키외(Montesquieu), 볼테르(Voltaire)와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칭기스칸을 '풍요로왔던 아시아를 폐허로 만든' 잔인한 파괴자로 간주했다. 이러한 파괴자의 이미지는 웨더포드가 지적한 것처럼 19세기 인종우생학적으로 몽골로이드(Mongoloid)의 열등함 뿐 아니라 결함이 있다(defective) 못해 사악(evil)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잭 웨더포드가 근래 쓴 또 다른 책에는 이러한 '파괴자'의 이미지를 반전시킬 만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2016년 출간한 '칭기스칸과 신을 향한 여정(Genghis Khan and the Quest for God)' (한국어판 제목 '칭기스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에서 그는 칭기스칸의 프랑스어·영어판 전기들이 17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으로 유입되어 18세기 미국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1691년 프랑스의 여성작가 앤느 드 라로쉬-길렘(Anne de La Roche-Guilhem)의 '징기스칸, 타타르의 역사(Zingis, Histoire tartare)'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애장서였고, 다수의 뻬띠-들라크루와의 '고대 몽골과 타타르의 최초의 황제, 위대한 칭기스칸의 역사'가 보스턴으로 수입되었다.

프랑스 문학을 탐닉하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이 책을 그의 신문에 홍보하며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전역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구입자 목록 가운데 미국 독립 선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스(Thomas Jefferson)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잭 웨더포드에 따르면, 미국의 헌법 정신인 자유와 평화공존이 칭기스칸의 삶과 사상, 특히 몽골제국의 종교 관용정책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잭 웨더포드의 이러한 주장은 매우 흥미로우나 추론에 의존하고 증거가 부족하여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실제 어느 정도 칭기스칸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데 영감을 주었는지, 무엇보다 칭기스칸이 몽골제국에서 허용한 각 종교의 공존을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칭기스칸의 삶과 정치가 결코 파괴자 일변도로 유럽 및 미국의 독자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티무르 역시 18세기 유럽에서 파괴자로만 이해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도 무굴 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Babur)가 티무르의 후손이었고, 영국이 프랑스를 누르고 점차 인도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티무르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어 갔다. 인도 무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악바르(Akbar) 대제 시기 아부 탈립 후세이니(Abu Talib Husayni)가 발견하고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고 하는 '티무르 어록(Malfuzat-i Timuri 또는 Tuzuk-i Timuri)'의 영역본이 1780년 영국에서 '티무르의 민간, 군사에 관한 명령집의 표본(A Specimen of the Civil and Military Institutes of Timour, or Tamerlane' 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간 티무르에 대한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즉 티무르의 군대에는 질서 정연한 규율이 있었고, 그의 통치는 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법치에 가까웠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티무르 어록'의 진위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 과연 어디까지 어느 정도 티무르의 어록을 믿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몽골제국을 창설하고 발전시킨 칭기스칸의 어명이 자삭(Jasaq)이라고 하는 법조항의 위치를 차지한 것처럼, 티무르의 명령도 '법'으로 엄격하게 집행되었을 것으로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오늘날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칭기스칸이나 티무르가 파괴자인 동시에 건설자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몽골세계제국"이나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와 같은 표현은 이제 상투적으로 들린다. 티무르 제국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여전히 그 아름다움과 영광을 느낄 수 있다. 세계 각지의 기술자들이 제국의 중심부에 모여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기계장치나 물건들을 생산해냈다는 기록은, 칭기스칸과 티무르가 이룩한 제국이 인류문명 전체의 차원에서 동서문화 교류 실현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도 혹자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자 잊혔으면 하는 기록일 것이다.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모여있는 레기스탄(Registan) 너머에 남은 아프라시압(Afrasiab)의 폐허는 파괴와 건설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 연구의 가치는 현재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외면했던 칭기스칸은 벤자민 프랭클린과 토마스 제퍼슨에게는 종교 공존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절름발이 티무르의 어록은 18세기 영국인들에게 인도 지배의 꿈을 꾸게 했다. 과거의 역사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해석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초원과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정주사회의 격동적인 역사는 한반도에 갇힌 우리가 새롭게 발견할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 한 권으로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처럼 한 권의 책으로 꾼 꿈은 우리 모두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개척지로 인도해줄지 모른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파괴자이자 건설자, 제국의 영웅들… `인류문명 교류의 場` 만들다
이광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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