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불안정할때마다 한반도 위기"… 북핵보다 안정에 무게두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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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쇠퇴 영향 병자호란 발발
中 국공내전 후 한국전쟁 일어나
강원도內 차이나타운 건설 반대
공중파 사극 비난·김치 논쟁 등
국내서 '반중정서' 갈수록 고조
中, 北 자제 동시에 美 견제 나서
중국에 대한 관념 - 현실 구분해야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불안정할때마다 한반도 위기"… 북핵보다 안정에 무게두는 中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불안정할때마다 한반도 위기"… 북핵보다 안정에 무게두는 中
박홍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④ 북방과 한반도 안보 - 중국 혼란시기의 한반도 (1)


반중 정서가 심상치 않다. 강원도 내 차이나타운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70여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반대 서명을 하기까지 했다. 또 공중파 사극이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식 소품을 사용했다는 비난에 못 이겨 방영 2회 만에 막을 내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김치 논쟁' 등 중국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악플들이 달리고 있다.

반중 정서의 원인을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배경에는 역사·문화적 이유뿐만 아니라, 국가 간 문제, 그리고 초국적 자본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역사·문화적 배경은 상대적으로 원초적인 문제다. 한반도 거주민과 중국 대륙 거주민들은 수천년 이상 인접해 살아왔다. 한반도 거주민들은 대륙의 선진 문물을 흠모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륙 사람들을 비하하곤 했다. 조선후기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보여지듯 당시 조선 사람들은 청의 문물에 경탄했지만 동시에 청을 오랑캐로 비하했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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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에서도 한중관계는 '애증'의 역사였다. 봉건시기 조선은 '사대자소'를 외치며 중국을 어버이 국가라 인식했지만, 현실에서는 늘 긴장감이 흘렀다. 임진왜란기 선조는 명군과 왜군의 타협 가능성을 끊임없이 의심했으며, 광해군은 명의 원병 요청을 조선의 열악한 상황을 들어가며 거부하려 했다. 19세기말 조러밀약이나 박정양 사건에서도 중국으로부터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조선의 의지가 드러났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중관계는 '혈맹'이지만,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고, 중국은 대북 유엔제재에 반대하고 있지 않다. 한중관계 역시 서로 핵심적인 무역 상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사드문제에서 보여지듯 심각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렇듯 한중관계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관념과 실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에 치우쳐 현실을 적확히 보지 못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제정치라면 특히나 그렇다. 중국은 한반도 안보에 과연 어떤 의미인가?

◇중국의 불안정과 한반도 전쟁=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중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한반도 위기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5백 년간 발생했던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을 놓고 보면 그렇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논하면서 명나라의 쇠퇴를 빼놓을 수 있을까? 임진왜란 직전 명은 왕조 쇠퇴의 징후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만력제는 정사를 내팽개쳤고, 환관들은 발호했으며 관료들은 부패했다. 지방 각지에서 반란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된 일본을 명은 견제할 수 없었다. 소위 '세력균형'에 실패한 것이다.

동서고금 전쟁에는 무수한 원인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전쟁이 실제화되려면 전쟁 개시자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에 전쟁 개시자에 대한 적절한 세력견제가 이뤄진다면 전쟁은 일어날 수가 없다. 2차 대전 직전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단합해 히틀러 정권을 견제했다면 수천만 명이 희생된 참극은 애초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직전 명 역시 일본에 대한 명확한 경고나, 조선과 협력해 군사대비 태세를 갖췄다면 전쟁 발발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전쟁 초기에 왜군을 패퇴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정치로 혼란한 명은 그러한 여력이 없었다.


병자호란 역시 다르지 않다. 명이 건재해 여진족을 이전처럼 엄격히 통제·관리했다면, 병자호란은 애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그 쇠퇴가 가속화됐던 명은 더더욱 만주지역의 여진족을 통제할 수 없었다. 명의 세력약화를 활용해 누루하치는 여진족을 통일하고 국가체제를 급속히 완성했다. 그렇게 부상한 후금은 명과의 최후결전을 위해서라도 배후에 있는 조선을 굴복시키려 했다. 수많은 한반도 사람이 희생된 병자년의 참화는 그렇게 일어났다.
1894년 청일전쟁의 구조적 원인도 청일간의 세력전이가 이었다. 청제국은 이미 18세기 무렵부터 관료부패, 팔기군 체제의 균열, 백련교도의 난 등 왕조 쇠퇴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인구가 급속히 증가함으로써 민초들의 생계 역시 불안정해졌다. 무엇보다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충격'은 2천여년 지속된 중화제국 자체를 뒤흔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은 메이지 유신 이후 날로 강성해지던 근대 일본을 견제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곧 청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 이후 일제가 자행한 한반도 식민통치의 폐해는 이 땅의 사람들이 온전히 감내해야만 했다.

1950년 한국전쟁도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 전 인구의 10%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한국전쟁의 원인 역시 하나로 특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전쟁도 대륙의 불안한 정치상황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 수십 년에 걸친 국공 내전과 중일전쟁이 벌어졌다. 중국공산당이 이런 혼란을 끝내고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지만, 여전히 중국대륙 전역을 확고히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자본가 계급까지 연대의 대상으로 삼은 신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약한' 중국은 한국전 참전을 강력히 요구하는 스탈린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국제정치학에 '패권안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글자그대로 패권국가에 의해 국제정치 질서가 안정된다는 논리이다. 패권국은 국제질서를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현상유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는 그렇게 형성되었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형성됐던 팍스 시니카도 다르지 않다.

중국 왕조가 안정적일 때 동아시아 질서 역시 안정적이었던 반면 왕조교체와 같은 시기에는 주변지역의 안보 상황이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와는 별개다. 설령 반중정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지역안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핵문제와 중국= 현재 북핵문제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북핵문제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을 계속해 강조해오고 있다. 특히, 중국은 비핵화와 안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한반도 안정을 택할 것이다.

한반도 전쟁은 중국의 최고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의 동맹국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연루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중국은 한국전쟁 때와 같이 한반도에서 또다시 미국과 일대결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발전은 둘째치고 중국의 국가존립 자체가 불확실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현대전쟁에서 승자의 패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공멸이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사실,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일정 정도 '묵인'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반복적으로 주권국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엄살'이라고 보는게 적절할 것이다. 북한이 대외무역뿐만 아니라 원유수입 거의 전부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이 유사시 북한이 군사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맹국이라는 상황을 놓고 보면 그렇다. 게다가 중국에게 북핵은 미국을 견제하는 군사적 효용도 있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할수록 중국에게 북한의 효용가치는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지원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중국은 북핵문제가 전쟁 상황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적절하게 통제·관리될 수만 있다면, 사력을 다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

결국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보유 여부를 떠나 한반도 안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라는 문제가 된다. 한반도 안보는 누가 뒤흔드는가? 중국에게 그 주체는 상황에 따라 북한이 될수도, 또 미국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전략자산을 띄워 북한을 압박하는 미국의 행태도 중국의 안보이익을 훼손한다. 따라서 중국은 누가 더 한반도 안보위기를 고조시키는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그 대응 행태를 달리한다.

북한이 선을 넘어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을 조장한다고 판단된다면, 중국은 고위급 외교나 수면밑 압력을 통해 북한을 자제시킨다. 2017년 북한이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위기를 극도로 심화시키자 관영언론 환구시보는 미군이 38선을 넘지 않고 북폭만 한다면 중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사설까지 실으며 북한을 압박했다. 심지어 중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북한에 대한 '공동통치' 의도까지도 드러내기도 했다. 2017년 12월 중국측과 북한 급변사태 상황에 대해 협의했다고 공개한 미 국무장관 틸러슨의 발언은 이를 시사한다. 북한은 당연히 이런 중국의 행태에 강력히 반발했다. 당시 북한이 "조중관계의 기둥을 찍어 버리는 무모한 망동"이라며 전례 없이 중국을 비난했던 사실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반면, 중국은 북한을 자제시키면서도 동시에 미국의 과도한 대북 공세 역시 견제하려고 한다. 유엔의 대북제재를 찬성하면서도 동시에 원유금수 등 미국의 강경한 주장에는 반대하는 행태가 이를 보여준다. 2017년 한반도 안보 위기 당시에도 중국은 미국의 북폭시 불개입을 내비치면서도 동시에 북중관계가 선혈(鮮血)로 이뤄진 혈맹관계라는 사실 역시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사드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이익을 크게 훼손한다"라는 중국 국방백서는 미국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 핵이 두려워 리비아나 이라크처럼 침공해 올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이 아니라 중국과의 군사충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이나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유는 그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후에 중국처럼 '든든한' 동맹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물질과 관념도 다르다. 양자는 때론 일치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상황에서는 긴장감이 흐른다. 우리가 아무리 맨몸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관념이 강하더라도, 빌딩 옥상에서 뛰어 내리면 죽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한국 내 반중정서와 구조적으로 중국이 한반도 안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관념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이 현실을 치밀하게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보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혼동이 '의도적'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현실과 관념을 의도적으로 뒤섞고 그렇게 생산된 담론을 유통시켜 대중을 선동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은 오직 그들 선동가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관념과 중국이라는 현실을 구분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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