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슈퍼맨’이 아니고 ’실버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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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슈퍼맨’이 아니고 ’실버맨’입니다
예술가나 연예인이 퍼포먼스 차원으로 자신의 몸을 페인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선 구걸하는 사람들이 전신에 은색 칠을 한다. 이른바 '실버맨'(Silver Men)이다. '마누시아 실버'(Manusia Silver)로도 불린다. '마누시아'란 인도네시아 말로 '사람'이란 뜻이다.

전 세계에서 교통량이 많은 도시 중 하나인 자카르타.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자 정차한 차량 앞으로 전신이 은빛으로 빛나는 한 사람이 다가선다. 운전자를 향해 경례를 한 채 조각상처럼 미동이 없다. 1분 정도가 흐른 후 꾸벅 인사를 하며 운전자나 동승자에게 동전을 구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도네시아 경제가 위축되면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실버맨'이 부쩍 늘고 있다. 처음에는 수도 자카르타 시내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마트라섬과 술라웨시섬 주요 도시까지 퍼졌다고 한다.

'실버맨'은 대부분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멀쩡했던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거리로 나오게 됐다. 자신이 먹을 음식값, 아이들 우유값이라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잡'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하고 어둑해진 저녁에 거리로 나와 '실버맨'을 한다.

하루 종일 '실버맨'을 해도 우리돈 1만원도 못 번다. 돈을 조금 벌긴 하는데 대가도 치른다. 도료가 자극성이 강한 물질이라 피부는 가렵고 따끔거린다. 눈도 충혈된다.

이들이 전신에 은색 칠을 하는 이유는 일단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예전에 자카르타 시내에서 락카 스프레이를 전신에 뿌려 마치 조각상처럼 변신한 후 행인들로부터 돈을 얻어내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실버맨'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라 한다. 이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평범하게 구걸하는 것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몸을 가지고 구걸하는 것이 더 많은 동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고통 겪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런 '실버맨'의 증가다. 경찰이 단속을 하지만 '실버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청소년, 아이들도 나선다. '실버우먼', '실버키드' 등이다. 상당수 아이들은 단순히 용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길거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지만 일부는 어른들로부터 착취를 당한다고 한다.

'실버맨'들은 "구걸하는 행위는 무척 부끄럽지만 범죄에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운전자에게서 돈을 강제로 빼앗는 것도 아니다"고 항변한다. 그들은 "돈을 받으면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한다. '실버맨' '실버우먼' '실버키드'의 배경에는 코로나 시대의 우울하고 슬픈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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