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탁의 탁견] 북핵 30년, 어제와 오늘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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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0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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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탁의 탁견] 북핵 30년, 어제와 오늘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북한의 안보 지형은 급격히 위축돼갔습니다. 게다가 1992년 중국마저 남한과 수교하자 북한은 전략적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사회주의권이라는 시장을 잃은 북한의 경제도 극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거나 체제 전환을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했습니다. 또 중국처럼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더 공고히 하면서 핵 개발에 매진한 겁니다.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이 한국전쟁 때부터 핵무기를 염원했다는 연구도 있지만, 실질적인 핵 개발은 이때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세계 최강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보유국의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번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북한은 정녕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편승하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할까요.

흔히 핵무기를 개발하는 원인은 스티븐 M. 메이어가 제시한 기술이론(technical theory)과 동기이론(motivational theory)으로 설명됩니다. 기술이론은 기술, 자본 등 핵무기의 제조에 요구되는 기술적 수단들이 구비된 국가는 불가피하게 핵무기를 보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건데, 세계 최초 핵 개발에 성공한 미국이나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다섯 나라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발효시킵니다. 자기들 이외에는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한 거죠.

동기이론은 핵무기를 개발해야 할 절박한 동기가 중요하다는 학설입니다. 아랍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한방'으로 핵 개발에 나선 이스라엘이나 '공포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 그리고 북한도 이에 해당하는 나라입니다.

북한은 핵확산 역사에서 매우 특이한 국가입니다. 핵 개발을 시도한 어떤 국가도 비핵화(핵포기)를 전제로 핵 보유를 추진한 사례가 없는데,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줄곧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면서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을 벌여왔습니다. 이런 모순된 행보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 의도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 학설이 저마다의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이 안보 위협 때문에 핵 개발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방어적 군사목적설)이 있습니다.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전제조건이 한국이나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 예를 들면 주한미군 철수나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금지, 남한에 대한 핵우산 제거 등이라고 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고 보는 학설입니다. 핵 개발에 본격 착수하자 미국이 협상에 응한 것을 보면서 핵능력의 확보가 군사적 억지력 뿐 아니라 외교적 강제력이 있음을 터득했다(외교목적설)는 시각도 있습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 응해왔으므로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것이며, 협상의 궁극적 목적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북한이 2013년부터 추구해 온 '경제-핵무력 병진 노선'의 맥락을 이해하게 됩니다. 핵무력을 통해 군사적 억지력을 획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외교적 강제를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토대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어떤 것이 됐든 북한 핵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돼온 지난 30년을 정리해보면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도출된 모든 합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지향하고 상정했지만 결국 이행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핵 딜레마가 거듭된 30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핵억지력의 증강이 이른바 '외교적 강제'의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생존전략의 측면에서 볼 때 핵억지력 강화는 그에 비례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제재와 고립화를 심화하고 말았습니다. 북한 체제의 생존과 번영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뭘까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핵무력을 보유(또는 보유하도록 용인)한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편입돼 경제발전을 도모(경제-핵무력 병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기존의 관성으로 보면 미국은 핵 비확산의 가장 골치 아픈 존재인 북한의 핵보유를 방치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 핵문제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야 합니다. 미중 관계가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패권 도전국'입니다. 미국과 중국간 대결 국면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과 소련간 냉전체제와 유사한지를 놓고 학계의 논쟁은 뜨겁습니다.

다만 중국의 '패권도전' 의식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그런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은 강력한 압박전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전선에 북한이 가세하는 일이 불가능할까요. 북한이 이런 미·중 간의 틈새를 잘 활용한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북한 외교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되는 김계관은 지난 2007년 뉴욕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키신저가 누굽니까. 반세기 전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중국과의 역사적 화해, 수교를 끌어낸 사람입니다. 이때 김계관이 키신저에게 '왜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미국과 잘 지내고 싶다, 미국 입장에선 우리 공화국을 잘 활용하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전언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통 큰 담판을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앞으로 어떤 전략을 구사할까요. 바이든 행정부가 곧 출범하면 다시 북핵 협상이 진행될 겁니다. 탑 다운 방식이든 아니면 실무자들의 협상을 먼저 하는 바텀 업 방식이 됐든 북한 핵협상은 갈림길에 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중 관계와 북핵 문제의 속성 변화를 염두에 둔 치밀하고 지혜로운 외교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늘입니다.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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