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일기·편지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2202102269061001[1].jpg "[논설실의 서가] 일기·편지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공무원 요원들은 온 국민을 시켜 이 대통령 재출마를 요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나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을 억지로 시켜 대통령 재출마를 요청하고 있으니 이것은 민주국가에 위반된 일이 아닐까?" 경기중학교 3학년 김장환이 1956년 3월 15일 쓴 일기다. 그가 이 일기를 쓰기 열흘 전에 자유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이승만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승만은 뜬금없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대선에 나가야 한다는 관제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마차 조합원들까지 우마차를 끌고 나와 이승만의 3선 출마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 '소와 말까지 대통령의 재출마를 바란다'는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말까지 유행했었다. 조숙한 중학생이었던 김장환은 소소한 일상 말고도 이렇게 정치·사회적 사건들까지 꼼꼼하게 관찰하고 느낀 바를 일기장에 기록했다. 그의 일기장에는 1956년초부터 1957년 4월까지의 일기가 담겨있다.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그의 일기는 끝이 난다.
저자는 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는 자료들을 지난 30여년간 수집해온 컬렉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14가지 수집품(사진, 일기장, 편지, 영수증, 사인, 사직서 등)을 통해 역사의 퍼즐을 맞추었다. 독립협회 보조금 영수증을 통해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독립의 의미를 짚어보았고, 극단적인 마음을 품고 한강 다리를 몇번이나 오갔다는 내용의 엽서는 식민지 시기 청년들이 겪는 생활고와 취업난을 떠올리게 만든다. 손바닥만한 작은 전시수첩에는 한국전쟁의 참상이 담겨있고, 삼척공고의 육상대회 우승 기념사진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가 발품을 팔아 수집한 자료들은 겉보기에는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저자는 이 자료들을 통해 거대 역사에 가려졌던 보통사람의 역사를 생생히 복원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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