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로펌 무차별 진입 허용땐
경제 직격탄·국부유출 가능성도
5배 한도 '징벌적 손배'는 과도
美선 실손해액 기준 2~3배 한도
경제 직격탄·국부유출 가능성도
5배 한도 '징벌적 손배'는 과도
美선 실손해액 기준 2~3배 한도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재계 뿐 아니라 법 전문가들도 정부여당이 이번 정기국회 기간 내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는 '집단소송법 제정안', '징벌적손해배상제'(상법 개정안) 등 소위 기업규제 법안에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소송법의 경우 외국 전문 로펌들의 무차별 진입을 허용해 기업측 피해는 물론 국부유출의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나오는 만큼 법 적용의 범위와 배상액 수준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2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바람직한가'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 같이 주장했다.
앞서 법무부는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넓히는 집단소송제법 제정안과 소송을 당한 기업에 실제 입증된 피해액보다 많은 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 입법 예고했다.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현재 증권분야에만 도입된 집단소송을 모든 분야에 확대해 적용하는 것으로, 제조물에 대한 소비자 피해 뿐 아니라 심지어 가짜뉴스 등까지 사실상 무제한으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경우 상법 제66조2를 신설해 개정하는 것으로 "상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상인은 손해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상 제한 없는 '집단소송제'…외국 로펌 사냥터 될 것= 이날 발제자로 나선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법은 거액의 화해금을 노린 소송이 남용될 길을 열어주고, 외국 집단소송 전문 로펌의 무차별 진입을 허용한다"며 "소송 남발로 기업과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원고의 주장·증명책임을 완화하고, 소송 남용을 방지할 장치를 사실상 거의 없애는 등 개인이나 법인 등이 별 다른 준비 없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다.
한 교수는 집단소송법이 초기 미국 집단소송제와 유사하게 설계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서 막대한 배상액, 광범위한 소송자료 제출, 주가·회사 이미지 추락 등의 부작용이 심했다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집단소송제에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배심제가 결합해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집단소송제 확대보다는 현행 민사소송법에 있는 공동소송과 선정당사자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또 소송에 따른 피해 발생을 억제할 수 있도록 소비자기본법상 단체소송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징벌적 손해배상 '악의에 찬 고의'로 한정해야…5배는 너무 과해"= 윤석찬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이라는 발제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먼저 "미국도 실손해액을 기준으로 일정 배수의 배상액을 부과하는 배액 배상제를 도입할 때 2~3배 한도로 시행한다"며 "우리나라와 같은 5배 한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모범 사례로 꼽는 미국의 '맥도날드 햄버거 사건' 역시 현지에서는 오히려 제한과 규제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1992년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뜨거운 커피를 가져가던 노파가 입은 화상으로 48만 달러의 막대한 손해배상이 인정된 사건이다. 현재 상법 개정안에서는 가해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을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요건으로 규정했는데, 윤교수는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및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악의에 찬 고의'로 제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엑손사 선박 충돌사고의 원유 유출 피해자에게 지급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50억 달러(5조원)에서 5억750만 달러(6000억원)로 감액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실손해 배상과 징벌적 배상의 비율을 최대 1대1로 한 것으로, 미국에서도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계 "법안 취지와 달리 막대한 경영피해…중소기업 존폐위기 몰릴 것"= 이날 개회사를 한 김용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입법예고된 두 법안의 취지가 피해자를 효율적으로 구제하는데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관련 소송이 제기될 경우 기업은 집단소송의 속성상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막대한 부담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회복할 수 없는 경영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도 우리 기업은 과중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 민사소송에 시달리고 있는데,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진다면 정상적인 경영활동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이 회사의 존폐위기까지 몰리는 경우가 허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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