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통행세' 거래를 한 삼립 등 SPC그룹 계열사들이 검찰에 고발된다. 통행세란 거래 과정에 별다른 역할이 없는 계열사를 끼워 넣어 수수료를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 관여한 허영인 SPC그룹 회장,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이사 등도 고발조치가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SPC그룹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하고, 총수·경영진·법인을 고발키로 결정했다고 29일 밝혔다. SPC그룹은 지난해 12월 기준 자산 4조3000억원을 보유한 중견그룹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그룹 내 파리크라상, SPL, 비알코리아 등 제빵 계열사들은 밀다원, 에그팜, 그릭슈바인, 호남샤니, 설목장, 에스데어리푸드, 샌드팜, 호진지리산보천 등 생산 계열사들이 생산한 제빵 원재료와 완제품을 삼립을 통해 구매하고 총 381억원을 지급했다. 구체적으로 3개 제빵 계열사는 2013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밀다원이 생산한 밀가루(2083억원)을, 2015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에그팜, 그릭슈바인 등이 생산한 기타 원재료와 완제품(2812억 원)을 삼립을 거쳐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삼립은 생산계획 수립, 재고관리 등 중간 유통업체의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특히 밀가루의 경우 비계열사 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함에도 제빵 계열사들은 사용량 대부분(2017년 기준 97%)을 삼립을 통해 구매했다. 이는 2010년 비중(30%)보다 약 7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다른 계열사인 샤니는 2011년 4월 삼립에 판매·연구개발(R&D) 부문 무형자산(판매망)을 정상 가격(40억6000만원)보다 저가(28억5000만원)로 양도하고, 상표권을 8년간 무상으로 제공해 총 13억원을 지원했다. 당시 샤니의 양산빵 시장 점유율이 업계 1위였음에도 삼립 중심으로 판매망 통합을 진행하되, 양도 가액을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표권을 제외하고 거래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2010년 34.2%였던 삼립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이후 73%까지 올랐다. 공정위는 "삼립과 샤니 간 수평적 통합과 함께 수직적 계열화를 내세워 통행세 구조(생산 계열사→삼립→제빵 계열사)가 확립됐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파리크라상과 샤니는 밀다원의 주식을 삼립에 정상가격(404원)보다 낮은 주당 255원에 양도해 총 20억원을 지원했다. 주식 매각으로 인한 파리크라상과 샤니의 손실은 각각 76억원, 37억원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계열사들이 삼립을 지원한 이유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였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SPC그룹은 파리크라상(총수일가 지분 100%)이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2세가 보유한 파리크라상의 지분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2세가 가지고 있는 삼립의 주식가치를 높여 파리크라상에 현물 출자하거나, 주식으로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지분을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통행세 거래 등 대기업 집단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중견 기업집단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법 위반 감시의 범위를 대기업 집단에서 중견기업 집단까지 넓혀 기업 규모와 관계없는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