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중국 용과 인도 코끼리의 `血戰`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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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중국 용과 인도 코끼리의 `血戰`
박영서 논설위원
중국인과 인도인은 오랜 세월 동안 국경을 맞대고 살았다. 하지만 국경 대부분이 히말라야 산맥 등 고산지대여서 국경선은 모호했다. 양측의 승려들은 경전을 얻거나 구법을 위해 모호한 국경선을 넘었다. 동진(東晋) 시대의 승려 법현(337~422)은 65세의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어 천축(인도) 땅을 밟기도 했다. 수천년 동안 국경을 놓고 양측 간 충돌은 없었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 왕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지면서 상황은 변한다. 제13대 달라이라마 툽텐 가쵸는 1913년 라싸(拉薩)에 잔존한 중국군을 몰아내고 자신을 수장으로 한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다음해 3월 북인도 심라에서 국경선 확정을 위한 티베트·영국·중화민국 간 3자 회담이 열렸다. 인도 식민정부의 외교장관 헨리 맥마흔은 러시아가 몽골을 내·외몽골로 분리한 것처럼 티베트 분할 방안을 내놓았다.

독립을 위해 영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티베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안을 받아들였다. 중화민국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맥마흔은 이른바 '맥마흔 라인'을 긋고 히말라야 남쪽의 티베트 영토(현재의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 지역)를 영국령 인도에 편입시킨다.

1947년 독립한 인도는 이 국경선을 중국과의 경계로 받아들였다. 그때는 중국이 내전상황이라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이 1951년 티베트를 무력 병합하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중국은 맥마흔 라인이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며, 인도와의 국경은 영국의 식민지배 이전 경계선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중국과 인도 관계가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1949년 신중국이 탄생하자 가장 먼저 공식 승인한 나라가 네루가 이끌던 인도였다. 1954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네루는 평화공존, 내정 불간섭 등을 담은 '평화 5원칙'을 발표해 형제국임을 과시했다. 네루는 '비동맹주의'라는 외교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62년 10월 '중인(中印) 전쟁'이 발발했다. 여름 전투복을 입고 싸운 인도군은 괴멸적 패배를 당했다. 인도는 패닉에 빠졌다. 네루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케네디는 지원을 단행했다. 이로써 네루의 비동맹주의는 파탄났다. 그해 11월말 중국은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는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다. 이 전쟁으로 외교관계는 단절됐지만 중국은 소련, 인도는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적대국이 등장하면서 1976년 외교관계는 재개된다. 그러나 국경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양국간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달의 충돌은 심상치 않았다. 양측 군인 600여명이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갈완 계곡에서 격돌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도 국경에서 사망자가 나온 것은 45년 만이며, 사망자 수도 1967년 이래로 가장 많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 1, 2위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양강이다. 그리고 군사대국이기도 하다.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power)의 '2019년 군사력 랭킹'에 따르면 중국의 군사력은 세계 3위다. 인도는 4위다. 병력은 인도가 더 많다. 인도의 동원 가능한 병력(추정)은 346만2500명으로 중국(269만3000명)보다 훨씬 많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중국 용과 인도 코끼리의 `血戰`


인도군은 우리에겐 다소 낯설다. 흥미로운 점은 인도 육군이 종교와 카스트 등에 따라 연대를 별도로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시크교도로 구성된 '시크 연대', 크샤트리아(무사 계급) 계층으로 이뤄진 '라지푸트 연대'가 대표적이다. 연대가 다르면 훈련이나 생활도 다르고 접촉도 거의 없다. 당초 인도를 식민통치한 영국이 시작한 구조다. 하지만 인도 육군은 독립 후에도 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통일돼 있어야 할 군대가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시크교도는 영국 통치시대부터 군인으로 많이 기용됐다. 이들은 전투 중에도 터번을 벗는 법이 없다. 터번 착용은 반드시 지켜야할 계율이다. 그래서 시크교도 병사들을 위한 헬멧이 나왔다. 바로 '파트카(Patka) 헬멧'이다. '파트카'란 시크교 소년들의 터번을 말한다. 헬멧은 터번의 형상에 따라 가로가 넓고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게 되어있다.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에선 시크교도는 소수파다. 전체 인구의 1.9%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인도가 워낙 인구대국인지라 인도내 시크교도 수는 2500만명에 달한다. 해외까지 치면 약 3000만명이다. 따라서 시크교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다.

병력 수에선 중국이 불리하지만 항공 전력과 함정 수에서 중국이 앞서고 있다. 국방예산 또한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국의 군사력이 한 수 위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인 만큼 전쟁이 난다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전쟁은 양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주변국 개입이 불가피하다. 어쨌든 양국 간 자제가 최선의 해법이다. 다행히 양국이 국경지대 긴장 완화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스러운 산 히말라야에 어떻게든 평화가 돌아오길 기원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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