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정유·화학산업도 뿌리째 뽑힐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문진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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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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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정유·화학산업도 뿌리째 뽑힐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문진탄소문화원장
국제 유가가 끝없이 폭락하고 있다. 18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는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다. 배럴 당 10달러 대를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오일을 경계하는 러시아와 중동이 시작한 치킨 게임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코로나19의 공포까지 더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본래 국제 유가 하락은 소비자에게 좋은 소식이다. 기름값이 떨어지고, 화학제품의 가격도 내려간다. 그래서 원유가가 떨어지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유사에게도 크게 나쁜 일은 아니다. 정제 마진 감소가 부담스럽지만 소비가 충분히 늘어나면 불평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세계 경기가 핵폭탄급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아버렸다. 전 세계의 하늘 길이 막혀 버렸다. 러시아워인 월요일 아침 8시에 우리나라 영공을 비행 중인 민항기가 고작 12대뿐이다. 세계적 허브인 인천공항이 하늘을 날 수 없게 된 비행기를 세워두는 주기장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의 이동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식량·원자재·제품의 운반이 중단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치킨 게임을 시작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결정이 국제 원유 시장에서 일파만파의 유가 하락으로 증폭되고 있는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이다.

우리의 형편이 심각하다. 세계 6위 규모의 정유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내수 산업이 아니다. 수입한 원유로 생산한 휘발유·경유·항공유·윤활유의 절반 이상을 해외로 수출한다.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해서 생산하는 화학제품의 수출 물량도 엄청나다. 실제로 국가 통계에서 분리되어 있는 석유제품과 화학제품를 합친 정유·화학산업의 수출 규모가 반도체나 자동차보다 훨씬 큰 것이 현실이다.

경기는 시간이 지나면 되살아나는 법이라는 국무총리의 낙관적인 상황인식을 믿고 싶다. 그렇다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여유를 즐겨보라는 총리의 충고를 곧이곧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2008년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의 무차별적 압박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정유사에게 여윳돈을 챙길 틈은 없었다. 석유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고도화 시설에도 엄청난 투자가 필요했다.

모처럼 찾아온 저유가 상황을 정유산업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엉망으로 흩트려 놓은 에너지 세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정유산업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개편이 가장 시급하다. 난마처럼 뒤엉킨 면세·환급금·보조금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와 산업부의 쌈짓돈으로 변질된 수입부과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부추기는 화평법·화관법도 다듬어야 한다.

휘발유에 원가(리터당 458원)의 189%에 해당하는 867원의 유류세는 정부의 일방적인 횡포다. 생필품인 휘발유·경유를 담배·술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공장도 가격이 리터당 30원이 더 비싼 경유가 주유소에서는 오히려 리터당 200원이나 더 싸게 판매되는 것도 황당하다. 정부가 경유에 휘발유보다 리터당 230원이나 더 낮은 유류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LPG를 친환경연료라고 우기면서 무작정 경유를 밀어내는 환경부도 달라져야 한다. 환경부는 온실가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더욱이 화물차와 버스, 그리고 건설·농업·어업용 장비는 경유 이외에는 사용할 다른 연료가 없다. 아직도 환경부의 관피아가 LPG 산업을 틀어쥐고 있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정유산업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에너지 전환으로 어설프게 포장한 탈원전의 모든 부담을 떠안은 한전이 2년 째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탈원전의 파편에 치명타를 맞은 두산중공업도 휴업을 고민하고 있다. 기계·부품 산업의 메카였던 창원의 지역경제도 참혹하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좋은 일자리와 함께 애써 확보한 첨단 기술이 영원히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있다. 그렇다고 신재생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값싼 중국산이 애써 가꿔놓은 숲을 절망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다.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정부의 혁명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에너지 산업은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고 현실적이어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 에너지는 절대 없는 법이다. 국민 안전과 환경은 공허한 말잔치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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