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 전략기지인 유럽과 미국 등지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반도체 코리아'에 어떤 파장에 미칠지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당장 생산라인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장기화 시 수요·공급 모두 심각한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장비 업체 ASML이 임직원 1만여명을 대상으로 순차 재택근무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도 캘리포니아 본사 인원에 한해 재택대기에 돌입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 램리서치 역시 지난 17일 정부 지침에 따라 3주간 미국 프리몬트와 리버모어 지역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램리서치, ASML, AMAT는 세계 3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로, 글로벌 장비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ASML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미세공정 도입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노광장치(EUV) 독점 공급업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라인 증설에 최소 1~2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몇 주간의 가동 중단이 일정에 차질을 줄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다만 상황이 장기화 할 경우 장비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에도 라인을 멈추지 않았고, 인텔과 TSMC 등도 마찬가지다.
다만 설비 개조, 부품 교체 등에 장비 공급이 필요하고, 설비 설치작업 때 본사 전문가가 파견돼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인력 이동 제한으로 정상적인 작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업계의 더 큰 걱정은 수요 부진에 따른 시장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규모가 전분기보다 2% 줄어들 것으로 보고, 2분기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업계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IDC는 최악의 경우 올해 반도체 시장이 작년 대비 12% 이상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했고, 역성장 확률은 80%에 달한다고 봤다.
다만 서버용 D램 가격이 올 1분기 전기보다 5~10% 상승하는 등 여전히 견조한 모습도 보이고 있어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지난해 재고를 소진한 IDC(인터넷데이터센터) 등 수요업체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부진이 길어질 경우 구매일정을 늦출 가능성도 있다"며 "결국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가 현실화 할 경우 반도체 역시 이를 피할 방도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