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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두 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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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두 개의 고독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연구년을 맞아 캐나다 퀘벡대학교 몬트리올 캠퍼스에서 교환교수로 나와 있다. 며칠 전 연구소장 아그보블리 교수가 아침 인사를 건네며 친절하게도 몇 마디 덧붙이고 싶어했다. 뉴스에서 얼핏 보니 한국 집회에 모인 군중들의 규모가 대단하던데 무슨 이유로 그렇게들 모인 것이냐고. 그런데 내가 그에게 답을 하지 못한 것은 이와 관련된 정황을 외국인에게 길게 설명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본 한국 집회에 모인 군중이 서초동의 군중이었을까, 광화문의 군중이었을까.

몬트리올 구시가지 중심에는 '플라스 다름므'라는 광장이 있다. 몬트리올을 건립한 메조뇌프의 동상을 둘러 싼 이 광장은 17세기 이래 북미의 중심도시 중의 하나로 성장한 몬트리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항상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은 광장 동쪽의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이다. 나머지 3면은 19세기 이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듯 금융권 건물들로 채워졌다. 1817년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은행인 몬트리올 은행의 본점 건물은 그리스 신전의 모습으로 이 광장에 버티고 서있다. 또 다른 면에는 뉴욕생명보험 건물이, 마지막 면에는 캐나다국립은행 건물이 서있다.

캐나다국립은행 건물 앞에는 대개의 대형 빌딩이 그러하듯 작은 야외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각상은 특이하게도 하나의 작품이면서도 건물의 동쪽 모서리와 서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나뉘어 설치되어 있다. 한 짝을 이루는 이 두 개의 동상의 제목은 '영국 불독과 프랑스 푸들'인데 사람들은 '두 속물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쪽 모퉁이의 청동상은 타이트한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영국 신사가 미니 불독, 정확하게는 퍼그를 안고서 오른쪽을 향해 도도하게 얼굴을 들고 프렌치 캐나다의 정신적 상징물인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서쪽 모퉁이에는 샤넬 양식의 투피스를 입고, 팔에는 푸들을 안고 있는 프랑스계 여인이 왼편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멸시에 찬 시선으로 영국 번영의 상징인 몬트리올은행 본관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주인은 서로를 외면하고 등을 지고 서있고 팔에 안긴 강아지들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2013년에 설치된 조각가 마크 앙드레 자크 포티에의 이 작품은 몬트리올의 역사를 상징하는 구시가지 한 가운데의 광장에 서로를 적대시하고 상대 문화를 멸시하는 영·불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 한 사회를 나누는 두 개의 적대적 공동체, 이를 소설가 휴 맥레넌은 1945년 그의 소설 제목을 통해서 '두 개의 고독'이라 표현했다. 프렌치 캐나다가 다수를 이루는 퀘벡 주에서 기존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영국계 주민들, 프랑스어와 가톨릭 문화를 기반으로 영국계 캐나다와 구분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프렌치 캐나다 주민들의 반목은 '두 개의 고독'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지향하면서 동일 사회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상대방에게는 자신을 열지 않는다. 60·70년대 조용한 혁명을 통해서 두 집단 간 정치·경제적 불평등은 상당히 해소되었다. 그리고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통해서 퀘벡은 분리 독립하지 않고 캐나다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도, 그리고 국민투표라는 다수결의 민주적 절차 또한 이 '두 개의 고독'을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자기 집단 속에서 자족적인 그들은 사실 스스로 고독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두 개의 고독'이라는 표현은 퀘벡이라는 더 큰 공동체 속에서 두 하위 집단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이 고독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의 파트너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자 자기 가치에 대한 확신 속에서 타자의 가치를 멸시하는 이 두 집단을 사람들은 '두 속물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광화문과 서초동 두 광장에 모인 헤아릴 수 없는, 아니 헤아려서는 안되는 시민들은 각자가 선택한 광장에서 자신과 동일한 정치적 의견을 갖는 집단에 속한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 보다 더 수적으로 많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을까. 수구와 빨갱이라는 상대를 멸시하고 부정하는 언어 속에서 대화가 가능한 것일까. 말없이 양쪽에서 태극기만 펄럭인다. '하늘 높이 고독하게'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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