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조국의 추억

김승룡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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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조국의 추억
김승룡 정경부 차장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문구다. 그 미치도록, 죽도록 잡고 싶었던 화성연쇄살인의 진범이 나타났다. 1986년 첫 범죄 이후 33년 만에 DNA 분석기법을 통해 그 진범이 '이춘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춘재는 단연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춘재는 10건의 연쇄살인 사건 외에도 4건의 살인사건도 자백했다.

영화 마지막,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가 최초 살인현장인 텅 빈 논두렁 시멘트 물길 통로를 바라보며 사건이 '미궁' 속에 빠졌다는 걸 시사한다. 당시 영화가 대흥행하고 장기 미제 사건은 얼마 후 재수사에 들어간다. 그렇게 모두의 가슴에 '잡고 싶어 미치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했던, 미궁 속 사건의 진범이 나타났으니 온 나라가 떠들썩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화성연쇄살인범이 부산교도소에서 이미 무기수로 징역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불사르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얘기다.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마저도 어안이 벙벙할 일이다.

'조국 사퇴' vs '조국 수호'. 이 웃지 못할 '조국' 전쟁에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둘로 나뉘어 길거리 패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이춘재는 술집 안주거리 정도다. 서로 이번 집회에 "300만이 모였다"며 때 아닌 '300' 논쟁이다. 서로 "청와대가 앞장선 관제집회", "우스꽝스러운 과대평가"라며 힐난하기 바빴다. 이 정도면 이춘재가 멋쩍어 웃을 일 아닌가.

지난 2일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게 조국 감사인지, 대정부 감사인지 알 수가 없다. 정부 정책 감시와 비판은 온 데 간 데 없고, 조국을 둘러싼 고성만 요란하다. 조국 장관과 크게 관련이 없는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국회 상임위 국감마저 온통 조국이 최대 이슈다. 민생법안 처리도 뒷전이고, 정부정책 감사도 뒷전이다. 오로지 조국을 죽이냐 살리냐다.

급기야 국회의장이 하도 답답했는지 한마디 쏘아붙인다. "정치 지도자라는 분들이 집회에 몇 명 나왔는지 숫자 놀음에 빠져 나라가 반쪽이 나도 관계 없다는 것인가. 민생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진영 싸움에 국민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국가분열이 위중한 상황이다. 국회가 갈등과 대립을 녹일 용광로가 돼도 모자랄 판에 이를 부추겨야 되겠는가. 국회 스스로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있다. 국민 분노에 가장 먼저 불타 없어질 게 국회라는 걸 알아야 한다."

참 기가 막히게 적확한 질타다. 민생이, 나라 경제가 갈수록 위급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저성장률, 저물가, 저수출, 저투자, 저소비… 온통 경제지표가 '저(低)' 국면에 빠졌다. '마이너스'까지 간 저물가 속 디플레이션(D, Deflation)과 함께 장기 경기침체(R, Recession) 공포가 한국은 물론 세계를 휩싸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한일 경제전쟁도 금방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중국 경제는 '포치'(7%를 밑도는 성장률)에서 '포리우'(6%를 밑도는 성장률)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외에도 유럽연합(EU)과도 무역전쟁을 벌일 참이다. 가뜩이나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갈등과 함께 경기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EU 경제는 더 가라앉을 분위기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 지수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8월 최고점을 찍은 가운데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지난 9월까지 10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과거 우리 수출 성장의 주춧돌이었던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전통 주력산업은 물론 최근엔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첨단 IT제품마저 수출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물론 내로라는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보다 내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가 더 나쁠 것이란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지금 우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쌀독 바닥이 드러나려고 하는데, 집 지키는 개를 죽일지 살릴지 온 집안이 둘로 나뉘어 싸우는 형국이다. 진짜 경제가 무너져 빚에 몰려 줄줄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그 때도 '조국 촛불' 들고 검찰청 앞으로, 광화문으로 나갈 텐가. 아마도 그 때는 경제 살려내라고, 내 일자리 돌려달라고 횃불 든 군중을 보게 될거다. 경제 붕괴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간 '조국의 추억'을 먼 훗날 회상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김승룡 정경부 차장 sr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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