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은 18일에도 미묘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곳에 방점을 찍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당신을 만난다"며 "국민의 손을 잡고 반발씩, 끝내 민주주의와 평화를 전진시킨 김 대통령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더 많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한일 관계 개선 등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며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를 되새긴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는 김 전 대통령이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본회의장에서 연설하며 강조했던 표현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김 전 대통령의 공을 치켜세우며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를 겨냥해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읽힌다.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맞춰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추도식도 열렸다. 이 자리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황교안 자유한국당·손학규 바른미래당·심상정 정의당·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여야 5당 대표가 참석했다.
문 의장은 추도사에서 정치권과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양국 관계의 해법과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은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정치인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다"며 "민족 대도약의 기회를 맞아 국론을 모아야 할 정치권은 서로를 탓하며 반목과 갈등의 골만 깊어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여야 5당 대표는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약간의 온도차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김 대통령은 위대한 민주투사이자 정치가였고 제게는 정치적 스승이었다"며 "김 대통령의 반듯한 족적이 있기에 저와 민주당은 항상 그 뒤를 따라 걸을 것"이라고 전했다.
황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전직 대통령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언급하며 "정치 보복은 없었다. 그 장면은 우리 국민들이 갈망하는 통합과 화합의 역사적 상징"이라고 말했다. 문 정부의 적폐청산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손 대표는 추모사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반대세력의 요구에 따라 줄 것을 주고받을 것은 받는 진정한 협치의 달인이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한 굳건한 한미동맹이 국제관계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회고했다.
심 대표는 "대통령이 일찍이 제안해줬던 승자독식 선거제도 개혁, 온몸 던져 완수하겠다"며 "국민을 섬기며 정의의 역사를 신뢰하면서 정의롭지 못한 정치, 평화롭지 않은 정치,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를 반드시 바꿔내겠다"고 했다. 정 대표는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거대한 산맥"이라며 "앞으로 후세들은 100년, 1000년 대통령을 거대한 산맥, 큰 바위 얼굴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 문희상 국회의장(왼쪽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