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상권] 뻔한 `초대가수` 대신 `팽이대회` 개최… 시장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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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상권] 뻔한 `초대가수` 대신 `팽이대회` 개최… 시장이 살아났다
디지털타임스 연중캠페인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자문위원과 취재진이 방문한 용문천년시장이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이곳은 상인회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낙후시장이라는 오명을 벗고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오는 '모범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양평=이슬기기자 9904sul@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17 양평 상권 (용문천년시장·물맑은시장·양수리전통시장)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상권 정밀진단>

용문천년시장


수년 전만 해도 낙후 시장… 상인회 주도사업 잇단 대박

각설이 공연 대신 난타… 어린이 행사 늘자 관광객 북적

"아이디어 없이 실패 사업 반복하는 탁상행정, 현장 죽여"

양수리시장

음식점 빼곡한 시장인데… 대표먹거리 없어 큰 문제

5년전 정부 특화상품 개발·교육까지 했지만 그때뿐

"상인들 변화 받아들이려는 노력 부족… 침체 악순환"



아프리카 잠비아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그의 저서 〈죽은 원조〉에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게 원조는 정치적, 경제적, 인도주의적 재앙이 돼왔다"고 주장했다. 원조 기관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라리아 등의 질병에 걸릴 것을 우려해 모기장을 나눠주지만, 현지의 모기장 업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현지의 모기장 업체가 없으니 모기장이 헤질 때 쯤에는 다시 모기장을 원조받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원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한국은 전쟁직후에는 에티오피아보다 가난했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 원조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타락한 정부와 부패가 비교적 적은데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미래를 정확히 내다본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 계획으로 산업이 발전되면서 원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권자의 결정에 따라 '거대 정부'를 타락.부패 시킬 수도, 발전을 이룩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면, 작은 전통시장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용할 수 있을까. 경기도 양평에 있는 3개의 전통시장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양평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조선시대부터 큰 시장이 들어선데다, 빼어난 경치에 서울과 접근성이 우수해 매해 100만 명 가량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여서 기본적으로 경기도 내 전통시장보다 훨씬 우수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하지만 양평에 있는 3대 시장인 양평물맑은시장, 용문천년시장, 양수리전통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규모 면에서는 물맑은시장이 가장 크지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3분의 1 규모인 용문천년시장을 양평에서 가장 활성화되고 운영이 잘 되는 전통시장으로 꼽는다.

용문천년시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에서 '낙후시장'으로 평가되던 곳이었지만 직접 찾은 양평용문천년시장엔 생기가 돌았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30일에는 마침 5일장이 들어서 용문역 앞 도로가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로 가득 메워졌다. 전통시장의 초입에는 으레 각설이 공연이 연상되지만 이날 시장에서는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난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공연이 익숙한 듯 이를 보러온 시민들로 광장이 가득 찼다. 저마다 더위를 쫓기위해 얼음이 담긴 컵이나 부채를 들고 있었다. 시장에서 구매한 물건들이다.

몇년만에 낙후시장에서 가장 활성화된 시장으로 탈바꿈된 용문천년시장이지만 정작 시장의 활성화를 이끈 유철목 상인회장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그간의 어려움부터 토로했다.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은 많지만 〈죽은 원조〉처럼 결국 "주인없는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18억 짜리 사업이면 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와야 하는데, 18억 중에서 1억 8000만원 밖에 효과를 못보는 게 현재의 시장 사업" 이라고 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쏟아붓는 예산은 5370억 원이다.

◇'명품 전통시장'도 현장과 괴리 토로=양평용문천년시장의 초대 상인회장으로 6년가량 재임하면서 시장의 활성화를 이끈 유 회장은 지난달 30일 '필드'의 문제점을 짚어내지 못하는 탁상행정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변화 의지가 크지 않은 상인들의 태도도 아쉽다고 말했다. 자원은 있지만 필드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공무원과 지원은 원하면서도 변화는 좀처럼 수용하지 않으려 하는 상인들이 만나면서 지원사업금이 '주인 없는 돈'이 된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취임 이후 공무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값비싼 트로트 가수 초청 공연을 하는 대신 어린이 손님 유치를 위해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인 '팽이 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파격적인 사업들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에 280팀이 참가해 시장이 북새통을 이루는 등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유 회장은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5년간 80억~90억 원 가량의 지원 사업을 받았는데, 정부 기관에 아쉬움이 있다"며 "전통시장은 공무원도 전문가 수준이 돼야 하는데, 탁상머리 행정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이 많다.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예를들어 정부의 지원사업이 적재적소에 반영되려면 해마다 늦어도 2~3월부터는 사업이 시작되는 것이 좋은데, 실제로는 4~5월에 들어서야 사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국민의 세금을 좋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제한된 기간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 회장은 나아가 "국가에서 아무리 좋은 사업이 있어도 상인들 스스로 의지와 자세가 돼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하나를 해주면 두개를 바라고, 발로 뛰어 따낸 공모사업들이 알아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개탄했다. 상인들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이를 위해 보수를 받아 상권을 살리는데 생업을 전념할 수 있는 상근회장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회장은 "나도 조직을 만들 때 상인회원들을 일일히 만나고, 군청 도청, 중소기업청, 시장진흥공단만 두달을 넘게 다니면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썼고, 지금도 월 200~300만원 가량을 지출하고 있다"며 "지금 전통 시장에는 보스는 많은데 진정한 리더가 없다. 상인회를 활성화 하려면 리더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봐도 되는데, 리더가 보수 없이 한다는 것은 지속 가능 하지 않다"고 했다.

◇물맑은시장도 경기 불황에 고민=상인회가 비교적 잘 조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양평물맑은시장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8만 평 규모에 500개 가량의 점포가 들어서 있어 양평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양평물맑은시장은 새마을 운동을 할 때부터 상인회에 축적된 자금을 기반으로 상인회 운영에 관여하는 20명 중 8명의 상근직원을 두고 있다. 예산을 감시하는 고문단과 자문단도 위촉돼 있을 정도로 투명한 관리도 하고 있다.

직원들과의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현재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천희 회장은 2대 상인회장을 지낸 부친의 대를 이어 상인회장을 맡고 있다.회장직을 맡기 전에는 상인회 총무로 10년을 근무해, 지원사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을 두루 갖췄다. 상인회 측에서도 "지원사업이 잘 시행되는 것으로 치면 아마 전국 지자체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한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상인회 내부 단합은 어려운 숙제로 꼽힌다.

박수형 양평물맑은시장 상인회 사무국장은 "전반적으로는 사실 경기가 어렵다. 상권분석정보 시스템을 기준으로 봤을 때 원래 2등급이었는데, 이달 초에는 3등급이 나왔더라"라며 "잘되는 곳은 매출이 더 오른다고 하시지만 도태되는 점포가 있어 평균은 깎이고 있는게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지원정책으로 시행되는 상인 교육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서 "어느정도 컨설팅(교육)을 받은 분들은 아무래도 다르지만, 이것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선 분들"이라며 "(상인들이) 상인교육 등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상인분들 입장에서는 바쁘고 장사가 잘 안되니 다른 것들도 시도해보고, 그러다보면 다시 시간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잠재력 있는 양수리 시장이 '답보상태'인 까닭은=앞서 두 시장이 안고 있던 고민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양평 양수리 시장이다. 현장과 거리가 먼 공무원에 상인들도 변화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양수리 시장은 최근 답보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30일 방문한 양수리 시장은 휴가철인데도 유동인구가 많아보이지 않았다. 시장 앞에서 옥수수를 파는 한 상인은 본지에 "이곳을 대표할만한 특색 있는 먹거리가 없다"며 "대부분은 관광객인데 간단하게 먹을 길거리 음식도 없으니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 빼고는 접근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거의 대부분의 점포가 먹거리를 파는 시장인데 정작 내세울만한 먹거리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상호 양수리 시장 상인회장은 "5년 전 쯤 정부 교육프로그램으로 특화 상품 음식을 만들자고 해 콘셉트를 '연꽃'으로 잡고 떡갈비를 만들어라, 칼국수를 만들어라 하면서 전문가들이 방문해 가르쳐주고 신문과 팜플렛을 화려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면서도 "그리고 전문가들이 떠나면 그들이 없으니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이건 부실한 정도가 아니라 용두사미"라고 하소연했다.

최 회장은 "아이템이 아니라 기본적인 컨설팅 교육부터 필요하다고 느꼈다. 시각적인 것 부터 편의성까지 고려해 시장을 살리려면 문짝이라도 미닫이로 바꿔주고, 신발을 벗어야 하는 좌식구조에서 벗어나 입식으로 바꾸고, 천장의 등(燈)도 조도가 떨어져 칙칙하니 백화점 수준으로 밝게해야 한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며 "하지만 듣는 상인들의 절반 정도는 '나도 너만큼 알아', '나도 예전에 다 해봤어'의 반대급부가 깔려있어 추진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양수리 시장을 마치고 기자가 들어간 식당은 신발을 벗고 앉아야 하는 곳이었다. 골목은 무척 한산해 이따금씩 한 무리를 찾을 수 있을 정도였으나, 정작 상인들은 "우리도 신기하게 느낄만큼 파리만 날리는 곳은 없고 막상 가게를 들어가보면 사람이 차 있다. 여기 있는 상인들이 나름대로 먹고 살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 수퍼마켓 상인은 "몇 해 전 연꽃 관련 음식을 컨셉으로 시장이 들썩 했는데, 지금까지 하는 가게들은 그나마 잘 되는 편이고, 나머지 가게는 항상 비슷하다"고 했다. 유일하게 들어서있는 프렌차이즈 가게인 롯데리아는 손님을 맞이 할 수 있는 문이 시장쪽으로 나 있지 않았다. 서울·수도권 등 외지에서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 북적이지 않는 이유를 그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양평=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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