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종북 對 친일` 프레임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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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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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종북 對 친일` 프레임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1950년 6·25 전쟁당시 한반도에는 엄청난 양의 삐라가 뿌려졌다. 1953년 7월 휴전까지 모두 25억장의 삐라가 살포되었다. 전단지 크기를 가로 17cm, 세로 10cm로 계산하더라도 이는 한반도 총면적 22만 276㎢를 20번 덮는 양이다.

미국은 당시 6·25 전쟁을 첫 냉전(The Cold War)으로 규정하였다. 즉, 공산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첫 무력충돌로 바라보았다. 그러다보니 미군의 삐라에는 북한을 소련과 중국의 꼭두각시로 묘사하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 북한과 소련에서 제작한 삐라에서는 미군은 일본인의 대리인으로, 한반도를 침략한 또 다른 제국주의자로 그려졌다. 일본 식민지 시대 36년을 겪은 한반도 거주민들에게 "미군=일본인"이라는 규정은 매우 효과적인 메시지였다고 한다.

전쟁이 멈춘 지 6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일과 종북 프레임(Frame)속에 살고 있다. 이는 6·25 전쟁당시 '반일 혹은 반공'으로 규정된 삐라 메시지의 변형이다. 프레임이란 사건이나 사실을 이미 알려진 특정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이야기 전달방식을 일컫는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특정 사실을 선택하거나 배제하면서 이야기 덩어리를 만든다. 이러한 프레임은 듣는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이나 기억에 맞물리면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여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순신' '거북선' '죽창'은 단순한 명사가 아니다. 일본의 침략에 힘겹게 맞섰던 역사를 떠올리는 반일의 프레임이다. 또 '이완용' '일본순사' '동양척식' 등의 단어를 들으면 매국과 일본의 수탈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프레임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새누리당 시기부터 친일프레임에 시달려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2004년 일본 자위대 행사에 참여한 이후 '나베'(나경원+아베)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친일기업인의 후손인 김무성 의원이나 일본군 장교출신의 박정희 대통령 역시 친일 프레임을 강화할 때 자주 언급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일본에 우호적 발언을 하면 어김없이 반일프레임이 작동한다. 얼마 전 나경원 의원이 "우리 일본" 발언이 논란이 된 것도 친일프레임의 연장선에서 봤기 때문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종종 종북프레임의 대상이 된다. 민주당 의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칭찬하거나 북한 경제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곧 바로 '종북' '빨갱이'이라는 낙인이 돌아온다. 남북한 경제협력시대를 열자는 대통령의 제안도 냉전의 프레임에서는 공산주의 편들기에 불과할 뿐이다. 선거철만 되면 북풍이라는 이름으로 휴전선 넘어 북한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오죽했으면 지난 5월 문 대통령이 "종북 좌파라는 말이 개인이나 정파에 위협적인 프레임이 되지 않는 세상만 돼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한탄했을까 싶다.



일본이 당초 수출을 불허했던 반도체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의 수출을 재개하면서 한·일간의 경제 갈등이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치권은 일본 대응과는 별개로 한·일 갈등의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기 바쁜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이 밝힌 대로, 여당은 한·일 갈등을 내년 총선의 호재로 여기고 반일프레임의 연장을 희망할 것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익숙한 종북프레임의 소환시기를 저울질 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서는 일본과 북한이 여·야 의석수를 결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2000년과 2004년 연이어 미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배하면서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를 생각하지마'(Don't think about elephants)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레이코프는 공화당(코끼리)의 주장을 반격하기 위한 어떠한 말도 결국 공화당을 돕게 된다고 지적한다. 즉, 코끼리의 떠올릴 때마다 코끼리 프레임 속에 갇힌다는 주장이다.

어쩌면 지금이 반일과 종북 프레임을 버려야할 적기일지도 모른다. 반일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식민지 시대로 회귀한다. 종북이라고 말하면서 냉전체제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발적으로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케케묵은 반일과 종북 프레임이 아니라 좀 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프레임을 고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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