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운동과 공부의 균형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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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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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운동과 공부의 균형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얼마 전 민관합동기구인 스포츠 혁신위의 5번째 권고안이 발표되었다. 이 권고안의 핵심은 무너진 균형의 회복으로서, 이른바 학원 스포츠의 정상화 방안이 발표된 셈이었다. 발표자로 나선 스포츠 스타 출신 이영표 위원은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라도 학원 스포츠에 있어 '최소한의 학습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과거처럼 학습권과 직업선택권 사이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에 대한 기회를 균형있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교육의 관점에서도 학원 스포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권고안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여겨진다.

연예인만큼이나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큰 변화가 있어왔다. 특히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소위 엘리트 운동이 하나의 투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투자의 목적은 결과를 위한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프로선수들의 연봉은 이 투자를 크게 촉진시킨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투자의 지향점이 교육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투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좋은 학교로의 진학과 프로구단의 선택이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개인적인 운동능력의 수준은 매우 중요하다. 수업 외에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하듯, 엘리트 운동선수들도 훈련뿐만 아니라 별도의 레슨을 받는다.

투자는 수익자부담이 원칙이다. 부모의 정보력과 재력은 결과의 수준에 있어 실제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이유는 대학 진학을 위한 부모들의 투자와 동일하다. 이 과정이 모두 경쟁일 때 승리를 위한 투자는 대개 부가적으로 이루어진다. 역량 향상을 위한 투자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투자의 헌법 내에서 협력과 협동은 그저 수사(修辭)일 따름일 뿐, 그것을 지배하는 정신은 경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교육이라는 과정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길은 정해져 있으며, 그 길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스포츠라는 교육권을, 누군가는 학습이라는 교육권을 침해받아야만 한다.

물론 개인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 미래에 어떠한 직업을 선택할 것이며, 이를 위해 공부를 선택할지 아니면 엘리트 운동을 선택할지, 어떠한 공부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종목에 전념할 것인지는 분명 개인의 선택에 해당한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선택이 '교육'의 과정과 영역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균형의 붕괴는 학원스포츠만이 아닌, 교육의 비정상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투자의 몫이 과도하게 될 때 본래의 교육이 오히려 부가적인 것으로 전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정상화 속에서 직업의 선택과 학습은 마치 그 소통이 단절된 '두 문화'가 된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스포츠 혁신위의 권고가 교육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문제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습권 제공을 위한 제도인 주말리그에 대한 의견 대립은 정상화의 과정이 그리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물론 어떠한 제도이든 부족한 점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게 마련이지만, 이 의견의 대립은 단지 보완의 수준에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 근저에 직업선택권에 대한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려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흔들리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의지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의지와 더불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실행 방안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구체적인 콘텐츠 역시 마련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학에서도 이러한 콘텐츠 마련에 인색한 편이다. 몇 년 전 정유라 사태 이후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학사관리 방침이 크게 변경되었다. 교육부는 체육특기자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도록 지침을 마련하였다. 체육특기생들은 운동 외에 반드시 수업에 참여해야하며, 교수들 역시 출석과 학점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이러한 교육부의 지침은 최소한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스포츠 권익위 권고안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보장이 그저 형식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학습 능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교실이나 강의실에 가기만하면 학습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전혀 수용될 수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씩 강제로 들어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문이다. 일반 학생에게 체육특기생과 동일한 훈련을 수행하여 학점을 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경우 모두 어처구니없기는 매한가지다. 최소한의 학습권을 수업 시간 준수로 이해하는 것은, 어떠한 교육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방기일 뿐 교육이라 칭할 수 없다. 최소한의 학습권의 경우에도 반드시 피교육자의 능력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능력에 준하고 적절하고 효과적이며 활용 가능한 콘텐츠가 제공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외면하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이다.

균형의 회복은 스포츠를 위해서도 진학을 위해서도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을 앞으로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는 단지 직업선택의 능력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가르침이 교육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감독과 교사와 교수라는 직업의 명칭에 앞서서, 그들 모두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육자라는 소명의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올림픽에 참가했던 외국 선수는 자신의 직업이 운동만은 아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현재 인기 프로스포츠의 한 외국인 선수는 의사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은 차후에 걷기로 하고 지금은 야구의 길을 걷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와 다른 우리의 현실은 결코 우리의 모자람에서 연원되지 않는다. 균형의 회복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갖기를 희망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번 스포츠 혁신위의 권고안이 권고로만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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