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상권 살려내자] "하루 10만원 벌기도 힘들어요"… 서울 대표 먹자골목의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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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상권 살려내자] "하루 10만원 벌기도 힘들어요"… 서울 대표 먹자골목의 신음
디지털타임스 연중캠페인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자문위원과 취재진이 방문한 신당동 떡복이 타운. 과거 40여 곳의 식당이 성업하며 젊은이들의 웃음이 넘쳤던 이곳은 일부 가게를 제외하곤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지 오래다.

이슬기 9904sul@dt.co.kr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하루 10만원 벌기도 힘들어요"… 서울 대표 먹자골목의 신음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14 서울 중구 상권Ⅰ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상권 정밀진단

신당동 떡볶이타운

1980년대 DJ박스까지 갖추며 호황 누렸는데
이젠 '떡볶이 추억' 있는 단골들만 가족과 발길
터줏대감 '마복림 할머니' 가까스로 명맥 이어

장충동 족발골목
족발골목 무색… 20곳→4곳으로 가게 확줄어
"서빙 10명으로 부족했는데 지금은 단 2명뿐"
인근 대학생조차 "유명한것 알지만 안가게 돼"



"지난해에 비해 매출 30% 이상 빠졌어요."

떡볶이와 족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지역인 서울 중구 신당동과 장충동. 30여년 간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들이 공통적으로 내뱉은 말이다. 가족단위로 외식을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들 지역에서는 최근 웃음소리 대신 식당 주인들의 한탄만이 가득하다. 서울 중구의 대표적인 외식거리인 신당동과 장충동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손님 없어 '울상'인 신당동 떡볶이 타운=지난 2일 오후 네시 반쯤 찾은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 타운. 아직 손님이 몰리기엔 이른 시각이라고 해도 명성에 비해선 한산하다. 떡볶이 식당 '들국화'를 운영하는 조선희(59)씨는 이날 취재진이 네 번째 손님이라고 설명했다.

"오늘 즉석떡볶이 딱 4판 팔았어요. 이마저도 취재 오셔서 드시니까 4판이예요."

가스버너 위에 올려진 프라이팬과 그 안의 육수, 떡, 어묵, 군만두 등이 빨간 고추장 양념과 어우러졌다. 떡볶이 맛은 자신 있다는 조씨지만, 이를 찾는 발걸음이 급격히 줄어 울상이다.

조 씨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3년 전 이 곳에 식당을 차렸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 지금처럼 골목을 이루게 된 건 1970년대 후반부터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8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건 떡볶이 식당마다 있었던 'DJ박스' 덕분이다.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던 이른바 '멋쟁이 DJ오빠'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조씨의 들국화도 DJ박스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빛바랜 과거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찾는 주 고객층은 과거를 추억하는 40~50대가 대부분이다. 가정을 꾸린 이들이 자녀들과 추억여행을 떠나러 오는 곳이 됐다. 단골들이 없었으면 하루 매출 20만원도 올리기 힘들다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들국화의 떡볶이 가격은 평균 1만 5,000원 정도. 하루에 10팀 내외로 손님이 온다는 얘기다.

조 씨는 "지난해보다 올해 더 심하다"며 "이전에는 종업원을 썼는데, 이제 종업원도 못 쓸 정도로 몇 판 못 판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더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타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영업 중인 떡볶이 식당이 10여곳에 그친다. 과거 40여곳의 식당이 성업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그나마 신당동 떡볶이 타운의 대표주자인 '마복림 할머니'로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지만 이 식당마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복림 할머니 식당에서 주차를 돕는 주차요원은 "이전에 비해 손님이 줄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동대문을 찾는 중국인·일본인들이 떡볶이를 먹기 위해 신당동을 찾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요즘은 줄었고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간간히 온다고 한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 내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전에 비해서 찾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주말에는 북적인다. 관광객들도 오고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도 찾곤 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 중구청과 떡볶이 타운 주인들은 매년 떡볶이 문화 축제를 열어 방문객을 모았다. 축제 행사 중 하나인 긴가래떡 빼기는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이마저도 중단됐다. 구청에서 주는 지원금에 상인들이 회비를 걷어 축제를 주최했지만,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상권 살리기 '시급한' 장충동=서울 중구를 걷다보면 공사 중인 거리를 가리기 위한 임시 벽을 볼 수 있다. 이 벽에는 '중구 속 다섯가지 여행'의 대표 먹거리로 '장충동 족발거리', '신당동 떡볶이 거리', '오장동 냉면거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신당동에 이어 장충동 족발골목도 초라하긴 마찬가지였다.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영업 중인 족발식당은 단 4곳. 골목이 아닌 대로변을 따라 족발의 '원조', '시조' 간판이 붙은 식당 두 곳, 살짝 안쪽으로 두 곳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요즘은 IMF 위기 당시 보다 더 상황이 안좋아요."

'평남할머니집' 사장 최성숙(60)씨에게 최근 상황을 묻자 신당동 떡볶이 타운보다 더 참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총 3층인데 이전에는 3층까지 꽉꽉 찼다면 이제는 2층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 오늘은 예약손님이 있어서 그나마 2층이 찰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10명을 고용해도 손이 모자랐는데, 현재는 단 2명만 교대근무 형식으로 고용하고 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은 50여년 전 지금의 장충동 족발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만정빌딩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두 개의 족발집이 문을 열면서 장충동 족발집의 역사는 시작됐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이름을 타게 되고 덩달아 지금의 족발거리에 식당들이 줄 지어 생기기 시작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의 유명세를 증명하듯 평남할머니집의 한 벽면은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하지만 10여 곳에 달하던 족발 식당은 대부분 사라지고 식당 앞 3차로 공사 이후 주차공간 조차 확보할 수 없어 입지마저 줄었다.

50여년 동안 3대째 이 자리에서 족발을 팔며 장충동 족발 골목의 역사를 함께했다는 최 씨는 "족발 골목 좀 살려달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젊은 층이 찾지 않는 다는 점과 2차 문화가 사라지는 등 외식문화가 급격히 변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줄었다고 최 씨는 전했다. 그는 "시급해요. 우리가 시급하다면 다른 데는 더 시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족발거리를 찾은 대학생 이나은(21)씨는 "장충동 족발이 유명하다고 해서 처음 와봤는데, 유명한 것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대학교인 동국대학교를 다니는 김예지(21)씨는 "주말에는 족발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취재진과 함께 신당동과 장충동을 둘러본 MJ소비자연구소 장문정 소장은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곳이라고 해도 최근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인스타그램 등 SNS로 홍보를 하고 다양한 층의 소비자들이 올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진현진기자 2jinh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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