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133조 투자
시스템반도체 통큰 투자 배경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전자가 24일 133조원 규모의 '통 큰' 시스템반도체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이뤄낸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업적을 비메모리까지 넓히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차세대 수출 엔진을 마련하려는 정부 정책과의 시너지를 노린 이중 포석으로 읽힌다.
당초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장 방문이 예상되는 이달 말쯤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날 전격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내놓으면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는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게 재계의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미 올 초 이 부회장이 '2030년 비메모리 1위' 비전을 공개할 당시 이 같은 계획의 초안을 어느정도 구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와 정부도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를 3대 중점육성 산업으로 정하고 정책 역량을 집중하기로 함에 따라, 미래 주력 수출산업 육성을 위한 '민·관 협력' 시너지를 모색하기 위해 먼저 이 같은 발표를 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은 과거 정부에서 수차례 투자계획을 내놓았지만, '용두사미'에 그쳤던 해묵은 숙제였다. 정부가 1998년부터 20년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7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역주행했다. 예를 들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산업의 경우 2013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2.1%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1%에도 미치지 못해 집계조차 안되는 상황이다.
팹리스가 생존할 생태계 자체가 없다 보니 잠시 반짝했던 스타트업들도 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반적인 생태계를 조성하기보다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데 급급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업계와 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팹리스 상장사 24개 가운데 지난해 영업손실을 낸 기업은 13곳으로 전체의 50%가 넘는다.
그에 비해 중국과 대만 등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최근 비메모리 시장에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 매출의 68%가 미국 회사들로부터 창출됐다. 그 뒤를 대만이 16%, 중국 13%, 유럽 2%, 일본이 1%로 이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이 같은 괄목할 성장의 배경에 풍부한 인재풀을 꼽는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간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기회 및 위협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메모리와 파운드리 등 제조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팹리스는 설계자의 역량이 중요해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한번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매력적인 시장이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으로 반도체의 적용 범위가 자동차 등 비 IT(정보기술) 영역으로 무한 확장하면서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례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를 포함해 무선통신과 관련해 무려 13만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퀄컴의 경우 삼성전자 뿐 아니라 애플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고, 그 덕분에 공장 하나 없는 팹리스이면서도 매년 2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 맞물리면서 과거와는 달리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기반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민간과 정부 간의 엇박자로 수요·공곱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한 지금이야말로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마지막 기회"라며 "기업의 진정성 있는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 정책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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