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SNS가 싹틔운 `칠판아트`](http://contents.dt.co.kr/images/201904/2019041802102369660001[1].jpg "[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SNS가 싹틔운 `칠판아트`")
그런데 일본에서 몇 년 전부터 이 '갑자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독특한 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어 잔잔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일명 '칠판 아트 갑자원'이 그것인데, 고등학교 교실에 어디나 있는 칠판(일본에서는 흑판이라고 부른다)에 분필만을 활용해 그림을 그려서 인터넷으로 제출하는 방식의 컨테스트로 전국 고교생 중 500여 팀이 매년 출품하고 있어 인기가 치솟고 있다. 대회 방식도 야구의 갑자원처럼 전국을 6개의 블록으로 나눠 우수한 팀들을 선발한 뒤 최우수상을 선발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학교 교구회사인 '니치가쿠'라는 기업이 주관하는 이 대회 최우수 팀에게는 고교생 신분에 걸맞게 5만엔(약 50만원 상당, 사진은 2018년 칠판아트 갑자원 대상 작품)의 여행상품권을 제공한다.
![[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SNS가 싹틔운 `칠판아트`](http://contents.dt.co.kr/images/201904/2019041802102369660001[2].jpg "[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SNS가 싹틔운 `칠판아트`")
테마는 자유이고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분필'로만 제한되지만 전국의 수많은 '칠판 아티스트'들은 분필을 물에 녹여 마치 페인트처럼 칠판에 짖이겨 보거나 여러 가지 색깔들을 겹쳐서 재현하는 등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매년 속속 등장하면서 훌륭한 작품들이 경쟁적으로 응모되고 있다. 최근에는 작품집도 출간되고 일본정부에서도 국가적 프로젝트로 키우려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독특한 대회를 처음에 기획을 하게 된 배경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유행하고 있는 색다른 모습에서부터라니 더욱 흥미롭다. 이전까지 일본의 고교 졸업식장에의 흔히 보던 모습이라 함은 각각의 개인들이 기념카드를 만들어서 같은 반 전원에게 돌리면서 한마디씩을 쓰게 한다든가, 좋아하는 남학생을 찾아가 교복 상의 두번째 단추(심장에 가장 가깝다는 이유)를 떼어 간다든가 하는 게 전부였다. 몇 년 전부터 교실 칠판에 각종 기념문구와 캐릭터, 화려한 날개 등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놓고 그것을 촬영하며 SNS에 올리고 기념하는 것들이 전국적으로 붐을 타게 됐고, 졸업생들이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올린 수준 높은 칠판 그림들이 화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던 기업이 '칠판 아트 갑자원'이라는 대회를 5년 전에 기획했고 낙서 수준에서 시작한 그림들이 이제는 명실상부 팝아트의 한 장르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된 것이다.
칠판이란 도구는 그 위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게 되면 바로 지워버릴 수 밖에 없기에, 기록용이라든가 작품용으로는 사용되지 않던 것인데 기념카드를 전 급우들에게 돌리던 것을 귀챦게 여기던 고교 졸업생들이 칠판에 기념 콘텐츠들을 남기고 바로 휴대폰으로 촬영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며 붐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본 기업이 예술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전국 이벤트를 열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통적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세계가 기가 막히게 잘 버무려진 결정체가 아닌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고교 졸업식장의 모습을 보면 90년대에 교복이 부활됐을 때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를 뒤집어 쓰거나 하면서 과격한 행동을 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은 거의 없어져 무척 다행이다. 하지만 다소 조용한 분위기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념촬영 위주로 하는 등의 무미건조함 보다는 디지털강국다운 면모를 세계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기발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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