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상권 살려내자]일본 이와무라다 상인들은 달랐다

이벤트에 몰린 인파, 이후엔 발길 끊겨
상점가 주인은 누굴까?… 결국엔 주민
빈 점포에 커뮤니티·탁아소·공부방 운영
출근길 자녀 맡기고 퇴근땐 상점서 쇼핑
"경쟁 상대는 대형마트 아닌 타 지역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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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상권 살려내자]일본 이와무라다 상인들은 달랐다
이와무라다 상점가와 이온몰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행사에서 포인트적립카드(와온카드) 가입신청을 받고 있는 모습. 이와무라다상가조합 제공


[풀뿌리상권 살려내자]일본 이와무라다 상인들은 달랐다
이와무라다 상점가의 챌린지숍 중 하나인 수제햄버거 매장에 손님이 들어서고 있다.
나가노현(일본)=김미경기자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주민과 함께한 이와무라다 상인들

'일본에서 가장 긴 김밥 만들기' 이벤트가 벌어지자, 일본 전역에서 신문, 방송들이 찾아와 일제히 보도를 했을 정도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이제 기울던 상권도 살아나리라 기대됐다.

일본 나가노현 사쿠시의 이와무라다 상점가, 시골마을이지만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 상권이 고속철 개발로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가 젊은 상인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다시 살아나나 싶었다.

그러나 그게 희망에 불과했다는 것은 곧 드러났다. 손님이 몰렸지만, 이벤트 때 뿐이었다. 반짝이는 순간적 아이디어는 답이 아니었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젊은 상인들은 낙담만 하지 않았다.

◇상점가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 "상점가가 왜 필요하고, 상점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아베 신이치 이와무라다혼마치상점가진흥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아베 이사장은 "상점가는 당연히 상인들의 것이라고 여겨왔는데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점가는 주민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조합은 매월 1차례씩 무박 2일로 연수교육을 받으면서 지역밀착·고객창조형 상점가가 돼야 한다는 목표를 재설정했다. 교육은 무려 15개월이나 이어졌다.

전략이 없는 이벤트는 반짝 효과뿐이라는 것을 절감한 조합 측은 이와무라다 상점가만의 장점 찾기에 몰두했다. 아베 이사장은 "이와무라다 주변에는 시골답게 밭이 많다"면서 "신선한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신속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직접 반찬가게를 만들었다. 그날그날 수확한 채소 등 신선한 재료로 만든 50여 가지의 반찬은 주민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반찬가게의 순수익은 연간 300만엔(3050만원)을 넘어섰다. 조합은 반찬가게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상인들과 나누지 않고 상점가에 재투자했다. 빈 점포를 깨끗하게 정비해 주민들과 상인들이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꿨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실크스크린 등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 빈 점포는 연간 6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가 됐다.

빈 점포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합 측은 반찬가게 수익금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빈 점포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합 측은 2013년 고등학교 졸업생을 위한 '챌린지숍'을 기획했다. 챌린지숍은 일종의 상점가 인큐베이터 사업이다. 창업을 희망하는 고교 졸업생 등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월 15만엔 수준)로 점포를 임대해 준다. 상점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선배상인들이 경영 컨설팅을 지원하거나 고객을 연결도 해준다.

챌린지숍기획은 6개 점포 임대인 모집에 40여명의 지역 청년들이 모일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주제로 한 독특한 장식의 이발소나 수제 햄버거 매장, 젊은 취향의 마사지숍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내기 상인들은 상점가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4년 만에 챌린지숍 3곳이 일반점포로 독립할 정도로 안정권에 들어섰다.

2000년대 초반 42개 점포 중 20개가 문을 닫았을 정도였던 이와무라다 상점가는 현재 61개로 점포가 늘었고, 빈 점포는 3~4곳에 불과할 정도로 꽉 찬 상점가로 변모했다.

◇아이들이 뛰노는 상점가= 이와무라다 상점가에는 여느 상점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시설이 2가지 있다. 탁아소와 공부방이다. 조합 측은 2007년부터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육아상담소와 탁아소 등 육아지원 회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열고, 회원이 상점가에서 쇼핑을 하면 다양한 특전도 준다. 주민들은 출근길에 아이를 이곳에 맡기고 회사에 갔다가 퇴근길에 다시 아이를 데려가면서 상점가에서 장도 본다. 탁아소 아이디어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간 '주민밀착형' 서비스를 고심하던 끝에 나온 성공작이다.

아베 이사장은 "이와무라다의 아이들은 상점가가 직접 보호하고 키운다는 의미를 담은 공간"이라고 자부했다. 탁아소 옆에는 공부방이 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들러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 컴퓨터로 인터넷도 할 수 있다. 현재 탁아소와 공부방을 이용하는 어린이와 학생들은 무려 130여명에 달한다.

◇대형마트와 풀뿌리 상권, 상생한다면 이들처럼= 이와무라다 상점가와 일본의 대표적인 대형쇼핑몰인 '이온몰'은 불과 1.5 ㎞ 떨어져 있다. 이온몰은 개점과 함께 월 55만명, 연간 700만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로 주변 상권을 모두 흡수했다. 이와무라다 상점가와 이온몰의 싸움은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이 곳 상인들도 대형쇼핑몰을 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인들은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상점가 쇠퇴 이유는 우리가 변하지 않은 탓이다." 그들의 판단은 정확했고 적절했다. 아베 이사장은 "이와무라다 상점가는 무조건 이온몰과 상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와무라다 상점가는 2010년 7월부터 이온몰과 연계한 공동 포인트카드(와온카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대형마트 포인트와 이중으로 적립을 받을 수 있고, 포인트 적립비율도 높다. 와온카드 이용자는 개시 3년만에 1만명을 돌파해 지금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사쿠시 인구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이온몰 전단지에는 이와무라다 상점가 홍보도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아베 이사장은 "이와무라다 상점가와 이온몰의 경쟁이 아닌 이와무라다 지역 상권과 타 지역 상권의 경쟁이 되도록 방향을 잡았다"면서 "이온몰 역시 지역공헌, 지역친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 상점가의 상생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와무라다 상점가의 역발상, 여기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나가노현(일본)=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글 싣는 순서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하)선진 외국서 배운다 (일본르포)
2 주민과 함께한 이와무라다 상인들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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