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누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인가?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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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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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누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인가?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노후생활 자금인 국민연금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생소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면서 국민연금을 동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았지만 해석하자면 기업을 관리하는 '집사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이 공정경제를 달성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이제 스튜어드십 코드로 정부가 기업 집사처럼 민간 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공정경제는 법의 영역이다. 법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를 국민에게 강제 저축시킨 돈으로 공정경제를 위반하는 '문제'의 기업을 혼내겠다고 하면 국민연금은 안정성과 수익률이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본래 스튜어드십 코드는 민간투자자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주주행동주의 사모펀드나 소액주주운동도 여기에서 나온다. 한국처럼 국민연금을 동원해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설계하고 직접 운영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정부의 역할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데 있다. 단기 수익을 노리는 민간 투자자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업이 민간 투자자의 압력 때문에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고 감원을 하거나 신규 사업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노동이사제도를 도입할 기세다. 서울시는 공기업에 이미 노동이사 제도를 도입했고 민간 시중은행도 들썩인다. 노동이사제는 노조나 노동계 인사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이사로 참여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도입되어 있는 노조의 경영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경영참여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했다. 위기에 처한 현대차가 펠리세이드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고임금과 고용보호 강화에만 매달리는 노조와 합의해야 생산을 늘릴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과 국가의 사회계약이다. 여기에는 국민이 정부에 돈을 맡기면 정부가 고수익으로 국민에게 돌려주어 노후생활을 안정시킨다는 합의가 깔려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사회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동원이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국민은 위임에 동의한 적이 없다. 정부는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비판에 귀를 닫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신중하거나 반대하는 전문가를 누르고 있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찬성하는 사람은 띄워주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라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올린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 기업이 이익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업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연금이 해야 할 일은 그런 기업을 선별해서 투자하는데 있다. 구태여 국민연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높인다고 불필요한 비용을 들여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이 아닌 세제정책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취지는 좋아도 현실은 딴판이 되어버린 일이 무수하다. 자본주의의 미덕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한국의 정치풍토에서는 정경유착으로 왜곡되고,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있거나 큰 사고가 터지면 성금을 내는 사회공헌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그 기업은 처벌을 받았다. 게다가 주인 없는 공기업과 은행에는 채용비리가 난무했다. 이런 정치풍토 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비리를 키우게 될 것이다. 공기업의 임원은 이미 정권의 전리품이 되었고 이제는 민간 기업마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을 기업집사나 노동이사로 임명하고 기업이 부실해져도 국민연금을 투자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가 나라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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