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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哲人治者`로 본 학원교육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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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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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哲人治者`로 본 학원교육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서양의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註釋)이라 불릴 만큼, 그에게 빚진 바 크다. '국가'는 이러한 그의 철학이 가장 숙성될 무렵에 쓰인 유명한 대화편 중 하나로, 그는 이 대화편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국가의 상을 구상했을 뿐 아니라, 그 국가가 어떠한 통치자에 의해 다스려져야 하는지도 그려내었다. 플라톤이 이렇게 그려낸 그 나라의 통치자는 '철인치자(哲人治者)'라 불리고 있다.

'철인치자'라는 말에서 보이듯, 이 통치자는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리고 철학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플라톤이 말하고 있는 이 통치자는 결코 완성형 인간이 아니다. 이 통치자는, 선발되어야 하지만 그 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길러져야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 속에서 이 통치자들이 어떻게 교육되어야 하는지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철인치자라 불리지만, 이 통치자는 결코 철학신동 출신이 아니다. 플라톤의 통치자 교육에 있어 철학 교육은 사실 전체 교육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이 철인치자의 철학 교육을 위해 여러 교육들이 단계적으로 예비하여 있다. 그중 가장 기초적인 것은 체육교육이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표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의 한 시인이 한 말이었으며, 존 로크가 인용하여 유명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 말의 진정한 기원은 플라톤이 아닐까 한다. 플라톤은 진정한 인간을 이루는 것은 몸이 아닌 혼(정신)으로 보았으며, 이 혼은 몸에 갇혀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soma)은 무덤(sema)에서 연원된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갇혀 있기에 혼은 몸에 의해 혼탁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이 혼을 순수화하는 것은 플라톤의 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플라톤이 몸의 단련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만일 혼을 가둔 몸이 건강하다면, 그 혼탁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표어만큼은 아닐지라도, 몸의 건강은 혼(정신)이 건강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 셈이다. 몸의 건강은 중요한 덕목이었으며, 이를 위한 몸의 단련이 통치자 교육에 있어 가장 기초적 교육으로 안배되었던 것이다. 몸의 단련, 즉 체육은 플라톤에 있어 하나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으로서의 체육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을 접할 때면, 우리의 체육교육, 특히 학원스포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교육의 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과목이 저마다 독특하고 중요할 터이지만, 우리의 교육에서는 그러한 독특성이 그리 인정되고 있지 못하며, 체육교육은 특히 그러해 보인다. '주요과목'과 같은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듯, 교육에는 위계가 존재하는 듯하며, 일반적 체육교육은 입시교육을 위해 양보될 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 더욱이 학원스포츠는 심지어 교육의 틀 밖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때때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칭해지기도 하지만, 실제 관계는 그리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언론들에 의해 여러 번 보도되었듯, 단순 체벌 이상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각종 금전 문제들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마치 이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고, 학내의 문제임에도 교육의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학원스포츠가 교육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의 학습권도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운동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운동에 집중하는 학생들에게 공부까지 강요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둘 다 잘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실현되기 너무도 어려운 것일 따름이다. 물론 이 학생들의 학습권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원스포츠에 몸담고 있는 학생들도 수업 참여 및 성적에 대한 출전 제한 조치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유라 사태 이후 대학에서도 학원스포츠에 대한 관리가 매우 엄격해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것일 따름이다. 이들을 위한 맞춤 교육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수업에 참여하라고, 그리고 이를 통해 성적을 취득하라고 하는 것은, 일반 학생들에게 학원스포츠 운동선수와 겨뤄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운동하는 학생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교육일 수 없다.

학원스포츠를 학교 밖의 클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학원스포츠와 관련된 문제들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문제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보이지는 않는다. 미약하나마 기존의 통제나 규제가 무력해지고, 이로써 더 큰 학습권의 침해가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포츠산업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꿈을 자본의 논리에 맡기게 될 수도 있다. 근본적 문제 해결의 방안은 회피가 아니라 그것의 교육적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교육의 원리와 원칙이 최소한 학원스포츠만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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