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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평양 幽囚 73년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 입력: 2018-10-07 18:04
[2018년 10월 08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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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평양 幽囚 73년
이규화 논설실장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에 군 사열과 분열이 사라졌고 시가행진도 없었다. 국방부는 장병들에 노고를 끼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열병과 시가행진에는 적어도 수 주의 연습이 따라야 하니 그럴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학예회가 거의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학예회에 연극이나 율동 등을 준비하는 게 보통인데, 집단 연습으로 어린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 부모들이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지난 남북평양회담 때 능라도 경기장에서 열렸던 북한 주민의 집체 공연에 대해서는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군의 날 행사나 유치원 학예회 연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개월 이상 훈련과 연습에 강제동원됐을 북한 어린이와 주민들의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집체 연습에 참여했던 탈북동포들에 따르면, 서너 시간씩 꼼짝 않고 제 자리에 서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리현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주변에는 악취가 진동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들은 지난 여름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 노출됐어야 했다. 그들은 김정은을 정점으로 하는 소수 노동당정권에 의해 마음대로 동원되는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평양은 김정은의 거대한 연극세트장이고 주민은 엑스트라일 뿐이다. 노예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평양에서 집단체조를 직접 본 한 인사는 능라도 집체에 비하면 '올림픽 개막식은 장난'이라는 촌평을 했다고 한다. '장엄함을 느꼈다'고 한 이도 있다. 매스게임이나 대중 합창은 절도미와 유대감 표현에서 장엄하다 할 수 있다. 단, 그것이 자유인에 의한 것일 때에 한한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 박탈된 채 동원된 집체는 가장 끔찍한 인권유린의 현장일 뿐이다.

베르디의 '나부코'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언제 들어도 비장하고 심금을 울린다. 폐부에서 솟아나는 자유에의 피 끓는 갈구가 잘 나타나 있다. 회환이 섞인 희망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오페라 합창은 없을 것이다. 같은 노예들의 합창이라도 바빌론 유대 민족의 그것과 평양 북녘 동포의 그것은 천지 차이다. 나부코와 능라도의 합창은 그 본질이 너무도 다르다. 유대민족의 노래는 조국 강토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나온다. 반면, 능라도 매스게임의 기합과 함성은 고통의 신음일 뿐이다. 그들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기계적으로 강요된 동작을 하는 노예들이다. 감동은커녕 연민과 분노가 치솟는다.

히브리 노예들이 부르는 조국은 김정은 노동당정권이 입에 달고 사는 '민족'과는 전혀 다르다. 히브리 노예들은 고국을 향한 일심동체의 민족을 노래하지만, 김정은의 민족은 소위 김일성주체사상에 의한 김씨 일가의 세습독재에 동조하는 '조폭적 민족'이다. 남한에는 아직도 주사파의 선동에 넘어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능라도의 '위대한 조국'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수준이다. 사람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아무리 토론을 하더라도 진실이 드러나기보다는 반대파에 대한 감정이 폭발해 더 격렬하게 배척하는 일이 벌어진다. 현재 대한민국은 이런 이념적 간극이 깊게 패어있다.

북한은 개인의 자유와 생명권, 법치가 사라진 지구상의 이단지역이다. 미국은 14년 전 북한 인권법을 제정해 북한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 중이다. 일본도 우리보다 먼저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법제화했으나 실행을 담보할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 수립과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내팽개쳐져 있다.

심지어 인권을 유린하는 김정은정권을 옹호하고 나아가 경협을 서둘러야 하며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펴는 자들도 있다. 김정은에 압력을 가하면 정권 위기로 이어져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그러면 북 주민의 인권은 더 위협받는다는 주장도 한다. 한마디로 김정은정권의 배를 불려주어 북주민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 주민의 경제적 생존권을 위해 그들에게 도달하는지도 의심스러운 물품 지원을 주장하고 대북제재가 북 인권을 더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한다. 북 인권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은 오도된 정책이나 주사파들의 집요한 친북적 행태에 국민들이 아무 저항없이 세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저들의 공격을 무릅쓰더라도 거짓이 진리로 굳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북한 동포들이 김씨 일가에 갇혀 유형생활을 한 지도 73년이 됐다. 유대민족은 59년간의 바빌론 유수(幽囚)를 끝내고 자유의 땅을 다시 밞을 수 있었다. 북녘 2500만 동포들이 히브리 포로들의 노래처럼 '금빛 날개를 달고 동트는 언덕, 조국의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할 날'이 어서 오길 고대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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