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우리 시대의 賢人을 기다리며

[디지털인문학] 우리 시대의 賢人을 기다리며
    입력: 2018-09-13 18:09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디지털인문학] 우리 시대의 賢人을 기다리며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지금의 터키 땅에 밀레토스라는 그리스 도시가 있었다. 그곳의 한 청년이 어부에게 돈을 주고 그물에 끌어올려지는 물고기를 사기로 했다.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리자 물고기와 함께 값진 세발솥이 있었다. 청년은 돈을 지불했으니 세발솥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고, 어부는 그 돈은 물고기만을 위한 것이니 세발솥은 자기 것이라고 반박했다. 밀레토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논쟁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으로 갔다. "밀레토스의 자식이여, 세발솥에 관해 아폴론에게 묻는가? 모든 이들 중 지혜로 으뜸인 자, 세발솥은 그의 것임을 선포하노라." 밀레토스 사람들은 신탁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세발솥의 주인은 탈레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탈레스는 '나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없소.'라며 다른 사람을 추천했다. 사람들은 세발솥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갔지만, 그도 역시 자신은 세발솥의 주인이 아니라며 다른 이에게 물렸다. 그렇게 주인을 못 찾고 떠돌던 세발솥은 탈레스에게 되돌아왔다. 탈레스는 고심 끝에 세발솥을 아폴론 신전에 바쳤다.

그런데 그 세발솥을 받았다가 물린 사람이 모두 일곱 명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7현인', 즉 일곱 명의 '소포스'라고 불렀다. 탈레스 다음 소포스로 꼽히는 사람은 피타코스였다. 그는 귀족들의 권세를 누르고 민중의 지지를 받아 민주적인 정치를 펼친 뮈틸레네의 정치가였다. 세 번째는 기원전 6세기에 프리에네의 법을 제정한 정치가 비아스였고, 네 번째는 린도스의 통치자 클레오볼로스였다. 다섯 번째는 뮈손인데, 참주의 아들이었다.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농부로 지내면서 정치에서 거리를 뒀는데, 그 비정치적 행위가 역설적으로 훌륭한 정치적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섯 번째는 스파르타의 킬론인데, 왕을 보좌하면서 동시에 독재를 견제하는 감독관이었다. 사실 그는 이 감독관 제도를 만든 장본인인데, 스스로 그 직에 올라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구성하는 탁월한 정치력과 외교력을 보였다. 마지막 소포스로 꼽히는 솔론은 아테네 민주정의 초석을 닦은 정치가였다. 어떤 사람들은 세발솥을 마지막으로 받은 사람은 탈레스가 아니라 솔론이었으며, 솔론이 세발솥을 델피 신전에 보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가장 지혜로운 자에게' 선사되어야 하는 세발솥을 사양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진정 가장 지혜로운 자이며 세발솥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의 지혜(sophia)는, 앞서 간략하게 소개된 그들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삶에 유익하고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최초로 세발솥을 받았던 탈레스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라는 말로 철학(philosophia)의 길을 열었던 최초의 철학자(philosophos)라는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그는 메디아와 뤼디아, 페르시아와 같은 거대한 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도시국가 밀레토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절묘한 외교적, 정치적, 군사적 생존전략을 기획하고 제안했던 정치적 인재였다. 사실 그가 현인(sophos)이며 동시에 철학자(philosophos)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철학적' 사유를 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정치적 '지혜'(sophia)를 추구하고 실현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서 일곱 현인들의 시대가 지나자, 스스로 '지혜로운 자'임을 자처하며 지혜를 상품화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소피스트'(sophistes)라 불린다. 그들은 실용적 지식을 추구했지만, 많은 수가 이기적 욕망에 쉽게 타협했고 정의와 진리, 질서를 어지럽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른 바 '철학자'(philosophos)들은 참된 지혜, 근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논의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옛날 그리스의 지적 지형도를 그려보고 우리 시대를 비추어 본다. 막강한 대국들의 역학관계 안에서 분단된 우리가 올바르게 잡을 터와 삶의 길을 제시할 현인(sophos)은 과연 누구일지, 그가 제시하는 지혜(sophia)는 무엇일지를 묻는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