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계청, 중앙은행 같은 독립성 요구된다

[시론] 통계청, 중앙은행 같은 독립성 요구된다
    입력: 2018-09-04 18:30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시론] 통계청, 중앙은행 같은 독립성 요구된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통계는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특히 숫자가 중심인 경제분야에서는 통계를 근거로 정책이 입안되고 법안이 만들어진다. 영국에서는 한때 통계를 '정치 산수'라고 불렀다. 통계(Statistics)의 어원에 국가(State) 라는 의미가 담긴 것도 국가 운영에 통계가 필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거짓말 한다"고 썼다. 통계에 대한 불신이 통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계를 통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정치인들에게 있음을 비판한 글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수상은 "거짓말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는 말을 남겼다. 통계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국정 책임자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국가정책을 위한 기초자료 분석은 주로 추리통계를 사용한다. 추리통계란 표본에서 얻은 통계치로부터 모집단의 일반성을 추리하는 기법이다. 추리통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표본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표본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일부 계층을 누락시키거나 의도적으로 편향되게 표본을 만들면 통계 수치가 바뀐다. 국정 책임자는 통계가 잘 나와야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고 재집권에도 유리하다. 추리통계를 위한 표본추출을 입맛에 맞도록 조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이유다.

과거 이명박 정권이 '새 지니계수'의 공표를 막은 적이 있다. 지니계수는 소득분배의 정도를 알려 주는 지표로 0 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균등함을 의미하며, 1 에 접근할수록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를 뜻한다. 새 지니계수는 표본수를 2배 이상 늘려 고소득층의 소득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수정한 통계였다. 보정된 방식으로 작성된 새 지니계수는 0.357로 기존의 수치 0.307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그 결과 지니계수 순위가 OECD 34개국 가운데 상위권인 11위에서 최하위권인 29위로 급락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에게 불리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결국 새 지니계수를 공표하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1년 말 금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자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시 표본에서 금반지를 제외했다. 실제 금반지를 표본에서 제외함으로써 소비자물가지수가 0.4% 하락하는 왜곡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명박 정권 외에도 통계를 정파적 이익을 위해 악용한 사례는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통계가 정치적 외압에 의해 조작되고 오용되는 잘못을 막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은 통계 기구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장 릭 타베르니에 프랑스 통계청장은 취임 이후 세 번째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6년 이상 재임하는 동안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두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흔들림 없이 통계청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존 폴링거 통계청장이 임기 중에 총리가 바뀌었지만 거취의 변화없이 만 4년 넘게 재임 중이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취임한지 13개월 밖에 되지 않는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배치되는 통계를 생산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현 정부가 그토록 청산하고자 애쓰고 있는 과거의 잘못된 적폐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 신뢰는 믿을 수 있는 통계에서 시작한다. 국가 통계가 단기적인 정치 외압에 춤추지 않도록 중앙은행과 같은 독립성을 통계청에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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