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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산책] `정책금융`이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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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디지털산책] `정책금융`이 안보인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대표적인 정책금융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말 잔액 기준 각각 44.4조원, 21.3조원, 15.1조원의 정책자금을 공급했다. 같은 해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액이 653조원이고, 이 중 약 40%가 담보대출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소기업 신용대출 셋 중 하나는 바로 정책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 점을 지적한다. OECD는 우리 정책금융기관의 보증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4%로, OECD 평균 1%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평가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여전히 중소기업의 자금공급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은행의 대출관행이 보수적이며, 담보나 보증 없이는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무엇 때문일까?

정책금융의 쏠림과 정책금융의 목표에 대한 방향설정이 명확치 않은 것이 원인인 듯하다. 최근 10여 년 간 창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업력(기업나이) 3년 미만 기업과 소규모 기업을 위한 자금공급은 크게 증가했다. 최근에는 혁신기업·신산업 육성이라는 이름 아래 성장금융 또는 혁신금융이 부상하는 추세이다. 4차산업, 혁신기업, 고용창출기업, 매출 10억 달러 달성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 등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미 모태펀드를 통한 정부의 투자자금 공급이 3조원 대를 훌쩍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 연말에는 10조원의 혁신모험펀드 조성계획까지 발표됐다. 과거 경쟁적인 창업 지원이 이번에는 경쟁적인 성장 지원으로 옮겨 간 모양새다. 이제 수요자의 불만은 사라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세상에 딱 두 개의 중소기업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사업 활동이 왕성한 잘 나가는 기업과 몇 년 째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위기의 중소기업. 또 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기업 모두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 수 있다. 전자라면 아직 내보일 만한 매끈한 재무제표가 없거나 담보로 맡길 만한 자산이 변변찮은 경우다. 후자라면 이미 정책자금도 받을 만큼 받아 더 이상 자금을 빌릴 곳이 없는 경우다(정책자금의 장기 대출이란 대개 이런 경우다). 이 두 개의 경우라 하더라도 기업이 쉽게 자금조달을 할 수 있고 자금조달의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비로소 중소기업 금융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하다는 공급에도 수요자는 시큰둥한 정책금융의 아이러니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곳 모두 우리 금융시장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영역이다. 이른바 공급망금융으로 불리는 전자의 경우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이나 전자어음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중소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22%에 불과하다. 후자의 경우 대개의 정책금융기관은 이렇다 할 관심도 없다. 반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중소기업의 비중은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공급망 금융이나 구조조정 금융은 유니콘 기업 육성과 같이 시선을 끌고 주목 받을 수 있는 빛나는 분야는 아니지만, 사업에 활력을 부여하고 사업을 재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은행'이다.

연간 중소기업 B2B(기업 간) 거래의 3% 수준인 매출채권보험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 최소한 납품 중소기업의 절반은 은행에 기대지 않고서도 자금을 구할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 한 해 2000억원에도 못미치는 산업은행의 중소기업 사모지분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을 절반으로 낮출 수는 없을까? 민간금융과 유사한 것은 더 이상 정책금융이 아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도록 하는 것도 정책금융에게 썩 어울리지 않는다. 정책금융은 시장에 결여된 것,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금을 회수하고자 할 때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이 정책금융의 가치다. 마찬가지로 있는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시장을 열어주는 것이 정책금융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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