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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645) 제한물질의 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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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수명 연장시키는 '보존제' 역할
기준치 초과 제품 회수·판매금지해야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이덕환의 과학세상] (645) 제한물질의 독성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에 포함된 살생물질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조사 대상 1037개 제품 중 72개가 안전·표시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용이 허용되지 않은 살생물질이 검출된 53개 제품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회수하고, 판매를 금지시켰다. 가습기살균제에 썼던 'PHMG'와 'CMIT'가 검출된 제품도 있었다. 이례적으로 환경부가 위반 제품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소비자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제조사가 살생물질을 사용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제품의 생산·유통·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패·변질에 의한 손실과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부패·변질로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고, 그 과정에서 방출되는 독소에 의한 피해도 발생한다. 살생물질은 그런 부패·변질을 어렵게 만들어 제품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보존제'가 된다.

실제로 시중에 유통 중인 물티슈에서 쉰내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유통·사용 과정에서 물티슈의 부패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보존제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던 탓이다. 부패·변질에 의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정체가 정확하게 알려진 보존제(살생물질)를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살생물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소금·설탕·식초(아세트산)도 살생물질이고, 과일의 신맛을 내는 구연산(레몬산, 시트르산)이나 식물의 수지에 포함된 안식향산(벤조산)도 살생물질이다. 치약이나 화장품에 사용하는 파라벤도 있고, 재가습기살균제 때문에 널리 알려진 PHMG·PGH·CMI·MIT도 있다. 소독용으로 쓰는 메탄올·에탄올·과산화수소도 살생물질이고, 맹독성의 방부제도 모두 살생물질이다.

접촉·섭취·흡입의 가능성이 높은 가공식품·의약외품·생활화학제품에는 보존제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특히 섭취와 흡입에 의한 독성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국가에서는 정부가 가공식품과 생활화학제품에서 살생물질의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살생물질의 종류에 따라 아예 사용을 '금지'를 시키기도 하고, 허용 '기준치'를 설정해서 지나치게 많은 양을 사용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금지된 살생물질이 들어있거나, '기준치'를 지키지 않은 제품이 확인되면 반드시 회수하고 판매를 금지시켜야 한다.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금지물질을 사용하거나 기준치를 지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제조사가 의도하지는 않은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론 금지물질이 들어있다고 반드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독성이 아무리 강한 물질이라도 양이 많지 않으면 독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생물질의 독성은 언제나 사용량에 비례한다. 기준치를 넘긴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한 기준치는 일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통계적 여유를 두고 설정한다. 그래서 기준치를 크게 어기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살생물질의 사용을 제한하는 이유는 독성만이 아니다. 살생물질의 제조나 사용과정에서 윤리적·환경적·사회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사용을 제한한다. 살생물질의 생산 과정이 너무 잔인하거나, 작업자나 환경에 심한 피해를 주는 경우가 그렇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편리한 대체물질이 있는 경우나 가습기살균제처럼 사회적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유발시킨 경우에도 사용을 제한한다.

환경부가 회수·판매금지한 제품이라도 현실적으로 사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제조사의 주장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금지물질이 검출되거나 기준치를 초과한 제품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을 어긴 '불법' 제품이라는 것이다. 불법 제품이기는 하지만 사용해도 된다는 주장은 법치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절대 억지가 아니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나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준을 넘은 운전자를 처벌하는 것도 그런 행위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법을 지키지 않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을 어긴 운전자는 사고의 위험 가능성과 상관없이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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