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낭독기 사용시 다음 링크들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즐겨찾기 문화일보 PDF

[이규화의 경제통하기] 통제경제는 퇴보로 가는 급행티켓이다

이규화 선임기자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 입력: 2018-03-25 12:12
[2018년 03월 26일자 22면 기사]

원본사이즈   확대축소   인쇄하기메일보내기         트위터로전송 페이스북으로전송 구글로전송
[이규화의 경제통하기] 통제경제는 퇴보로 가는 급행티켓이다
이규화 선임기자


슈퍼컴퓨터, AI, 빅데이터는 강렬한 유혹이자 도구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복잡한 구성체라도 해석하고 설계하려 들면 거뜬히 해낸다. 천하무적 로봇태권V 같다. 단, 그 대상을 빌딩이나 연금이 아닌 인간 삶으로 바꾸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기기와 집도의가 있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을 해부 대상으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개인의 삶을 슈퍼컴퓨터에 넣고 돌려서는 안 된다. 개인의 행위는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복합 미묘한 감정과 감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한다는 개헌안을 보면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그 친절과 배려가 너무 강해 민망할 정도다. 일할 의무를 권리로 180도 바꿔 국가가 일자리를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못박으며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뿐인가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지 않도록 토지공개념을 더욱 강화하는 심적 원려까지 잊지 않았다.

그 근저에는 국가가 개입해 계획하고 통제할 때 경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미신이 작용하고 있다. 이 믿음은 아마 선의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경제가 수렁이란 사실은 1991년 소련의 몰락에서 재확인됐고 그 한참 전인 1920년대에 이미 결판이 났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이미 끝난 소위 사회주의계산논쟁을 다시 해보겠다는 도전으로 비친다. 시대착오다.

동일한 노동의 가치에 동일한 임금 조항을 보자. 동일한 노동은 구별이 쉽지만, 동일한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건가. 노동에는 수없이 많은 요인이 투입되고 결과도 천차만별이다. 여기에는 좌파들이 흔히 빠지는 '계산'이란 함정이 있다. 억지를 부릴수록 덫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간다. 혹시 슈퍼컴퓨터, 빅데이터, AI를 동원해 사회의 모든 경제행위의 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기야 박근혜 정부 때 수십 조를 추가 세수한 것은 개인의 거래 정보를 낱낱이 포착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이는 세금에 한정된 것이었다. 아무리 슈퍼컴퓨터와 AI, 빅데이터로 계산한대도 개인의 예측불허 생각과 감정, 암묵적 지식까지 어떻게 다 계산해낼 수 있는가. 더구나 한국같이 해외변수에 완전 노출된 고도의 개방경제에서 말이다. 특히 개인의 생각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시시각각 변해 스스로도 통제를 벗어날 때가 더 많다.

헌법의 제정과 개정은 문명의 물줄기를 갈라놓는 거대한 모멘텀이다. 생명, 자유, 재산권에 대한 천부 불가양의 정신을 담은 미국의 헌법은 국민 개개인에 체화됨으로써 오늘날 번영의 토대가 됐다. 대한민국도 70년 전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제헌과 이후 제헌 체제를 계승한 개헌으로 국민을 한데 묶어 오늘의 발전을 이룩했다. 이렇듯 개헌은 국민의 삶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발전의 기제와 동력으로 작용한다. 개헌이 진영간 갈등 증폭과 정파적 이익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일일이 개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미 역사가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야당 공세처럼 개헌안 발의가 6.13 지방선거 전략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국회통과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너무나 뻔한 결말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최고의 전문가들이 맨정신으로 말하는 걸 보면 사리나 논리를 이미 떠났다. 이념화된 아집의 서슬퍼런 날이 어른거린다. 저들보다 더 예리한 눈매와 정신으로 나락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막아야 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선풀달기 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