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낭독기 사용시 다음 링크들을 이용하면 더 빠르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즐겨찾기 문화일보 PDF

씨 없어 먹기 편한 ‘불임 바나나’, 치명적 약점이…

'씨 없는 바나나' 곰팡이·세균에 취약
유전자 활용 변형작물 개발 서둘러야 

입력: 2018-01-02 18:00
[2018년 01월 03일자 14면 기사]

원본사이즈   확대축소   인쇄하기메일보내기         트위터로전송 페이스북으로전송 구글로전송
씨 없어 먹기 편한 ‘불임 바나나’, 치명적 약점이…



귀했던 바나나가 이제는 지천이다.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1991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이다. 전체 수입 과일의 30%가 바나나다. 해마다 36만 톤이 수입되고 있다. 그런데 주수입국이었던 필리핀의 바나나 농장들은 2012년 태풍과 곰팡이에 의한 새로운 파나마병 때문에 쑥대밭이 돼버렸다. 이제는 페루·과테말라 등 남미산 바나나의 수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바나나는 후식용 과일이다. 그러나 바나나는 4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주식이고, 인류에게 밀·쌀·옥수수에 이어 4번째로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최대 산지인 인도를 비롯해서 동남아시아·남미·대만 등지에서 무려 1억 4000만 톤이 생산된다.

바나나의 품종은 매우 다양하다. 무려 1천 종에 가깝다. 우리에게 익숙한 달콤하고 부드러운 후식용도 있지만 찌거나 구워서 먹어야 하는 단단한 요리용 '플랜틴'도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후식용인 캐번디시가 세계 바나나 시장의 47%를 차지하고, 하이랜드(24%)·플랜틴(17%)·그로미셀(12%)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가 원산지인 바나나는 여러해살이 초본의 열매다. 나무가 아니라 4~5미터 높이의 거대한 풀에서 열리는 열매라는 뜻이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던 1만 여 년 전에 동남아시아에서 처음 재배가 시작된 바나나는 밀이나 쌀과 함께 가장 오랜 전통의 작물이다.

바나나는 식물학적으로 독특한 과일이다. 흔히 식물의 과일은 번식에 필요한 씨앗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화려한 색깔과 뛰어난 맛과 향기를 가진 과일 속에 번식용 씨앗을 숨겨놓은 것이다. 짐승이나 새를 유혹해서 씨앗을 멀리까지 퍼뜨리기 위한 놀라운 전략이다. 실제로 말레시아나 인도네시아의 숲에서 발견되는 야생종인 무사 아쿠미나타나 발비시아나 품종의 바나나에는 팥알 크기의 단단한 씨앗들이 잔뜩 들어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바나나에는 씨앗이 없다. 청도에서 생산되는 반시(납작감)와 마찬가지로 씨앗이 들어있지 않은 '단위결실'이기 때문이다. 꽃가루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식물이거나, 염색체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배수체'에서 볼 수 있는 별난 일이다. 우연히 등장한 불임 바나나가 열리는 잡종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불임 바나나가 번성하게 된 것은 온전하게 인공선택 덕분이다. 오늘날 재배되는 바나나는 대부분 복잡한 육종기술로 개발한 M. 아쿠미나타(A)/발비시아나(B)의 잡종들이다. 단위결실 바나나는 토란·글라디올러스처럼 땅속줄기가 커진 알뿌리(구근)를 이용해서 재배한다. 알뿌리로 번식시킨 품종은 유전적 동질성이 매우 높다. 과일의 품질 관리에는 유리하지만 곰팡이·세균의 공격에는 극도로 취약해진다.

유럽에서 열대·아열대 과일인 바나나를 대량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부터였다. 장거리 운송에 특별한 냉장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던 품종은 AAA형의 불임 삼배체로 당도가 높은 그로미셀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푸사리움이라는 곰팡에 의한 치명적인 파나마병이 퍼지면서 전 세계의 그로미셀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그로미셀 다음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M. 아쿠미나타의 삼배체(AAA) 잡종인 캐번디시였다. 1830년대에 영국 캐번디시 공작의 정원사가 아프리카 동쪽의 모리셔스에서 들여온 바나나를 온실에서 키우면서 개발했다. 1970년대부터 대량으로 재배되던 캐번디시가 요즘 다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990년대에 새로 등장한 변종 푸사리움 곰팡이 때문에 대만에서 재배하던 캐번디시의 70%가 죽어버렸다. 새로운 파나마 병은 중국·인도·호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곰팡이에게 저항력을 가진 바나나 품종의 개발은 쉽지 않다. 야생 바나나의 유전자를 이용한 GMO(유전자변형작물) 개발에나 희망을 걸어야 하는 형편이다. GMO를 거부하면 앞으로 바나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육종으로 개발한 불임 바나나도 진정한 자연산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T Main
선풀달기 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