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전망] 출연연 제역할 찾기 선결과제

안문석 고려대 명예교수, 전자정부민관협력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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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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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전망] 출연연 제역할 찾기 선결과제
안문석 고려대 명예교수, 전자정부민관협력포럼 공동대표
최근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과 중국의 '사드' 관련 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신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에 광풍을 몰고 오고 있다. 힘 센 나라가 힘자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세계 1, 2위를 자랑하는 그들의 힘 뒤에는 그 국가의 과학 기술력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제4의 물결 속에서 지금 우리는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이 나라의 힘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새 정부에서도 이를 인식해 제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신설해 과학기술예산권을 부여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정부의 시대에 뒤떨어진 과학기술 정책 때문에 공공연구의 중심축인 정부출연연구원(출연연)은 연구비 관리기관으로 전락했고, 연구의 자율성이 현저히 사라졌다는 주장이 과학기술인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이 분야를 전공하는 많은 사람들은, '짧은 숨'의 단기성과 중심의 연구가 만연하고, 군대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규제와 감사만 출연연에 가득했다고 비판해 왔다.

출연연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시대착오적인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법)'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그동안 무시됐었다. 출연연을 관리하는 공공기관법은 공공기관의 경영효율성과 대국민 서비스를 제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에서는 공공기관을 공기업, 준공기업, 그리고 기타공공기관으로 구분하고 있다. 얼핏 봐도 대단히 이질적인 기관을 함께 묶어서 획일적으로 규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출연연이 소속돼 있는 '기타공공기관'이다. 기타공공기관에는 출연연과 함께 강원랜드, 예술의 전당, 대학병원 등과 같은 서비스 기관이 함께 들어 있다. 출연연은 이 법에 따라서 연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서비스 기관과 동일한 평가기준으로 규제를 받아 왔었다. 출연연이 연구를 하는 기관이라는 출연연 본래의 기능이 완전히 무시된 관리행태가 지배해 온 것이다. 이런 관리행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부작용 가운데 몇 가지만 들어보자. 예산을 절감한다고 출연연의 비상근 이사회 의장과 상근인 기관장을 겸직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의결권과 집행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행정의 기본 원리가 무시돼 이사회의 견제력을 약화시켰다. 또, 주요 정책 사업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연구에 필수적인 주요 연구 장비의 충당금 적립이 일부 기관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었다. 그 결과, 첨단 컴퓨터 장비 등 주요 연구 장비가 노후화돼 해킹 등에 취약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출연연의 비상근 이사까지 공기업 임직원에 적용되는 엄격한 신원조회를 받게 했다. 그 결과, 이사회 구성이 지체되고 전문가들이 이사 공모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했었다.

연구자는 자유를 먹고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바람 나는 연구 생태계 조성을 저해하는 요인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과학자 출신의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공공기관법을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개정안의 핵심은 출연연을 공공기관법상 기타공공기관에서 분리해 '연구목적기관'으로 별도로 대우해 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출연연이 연구목적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서 본연의 기능을 찾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번 기회에, 출연연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고, 미래 지향적인 '긴 숨의 연구'가 가능하도록 출연연 거버넌스도 획기적으로 개혁해 주길 바란다.

연구하는 조직의 관리에는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보장하는 소위 행정학의 'Y이론'이 적용돼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정책과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군대식 조직에 적용되는 'X이론'을 연구기관인 출연연에 적용하면 창의적인 연구 활동은 불가능해진다. 예전에, 출연연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육성법에서 일체의 정부 개입과 감사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아,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과학한국의 기초를 세운 선배 과학자들의 지혜도 참고가 될 것이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공공기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신바람 나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고, 그 바탕에서 한국이 지능정보화 사회의 선두주자가 되길 기원한다. 그것이 힘 자랑하는 나라들 사이에 낀 한국이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출연연은 연구를 하는 기관이다. 새 정부의 창의적인 출연연 개혁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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