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늘어나는 `모피아`, 그리스로 가는 길](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31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늘어나는 `모피아`, 그리스로 가는 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된다"면서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 개혁을 이끄는 주체가 될 것을 당부했다(한국일보, 2017. 8. 23). 대통령은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지금의 정부 정책이나 개혁방향 그리고 적폐청산에 앞장서라는 촉구로 들린다. 공무원 개개인은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거대한 정부 조직의 작은 나사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어라키(hierarchy)를 이루고 있는 관료체계 속에서 상명하복(上命下服)은 공무원의 생존 수단이다.
지금 온나라가 살충제 계란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다섯 가지 살충제 외에도 맹독성 DDT까지 검출됐다고 해서 국민들 사이에 계란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식약처장이라는 사람은 '짜증'과 '질책'도 구별 못해 항간의 웃음거리가 됐고 오락가락 판정에, 안전성 검사는 농(農)피아(농식품부 관리와 마피아를 합쳐서 만든 콩글리시)들이 맡고 있어서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당국이 나서서 해명하는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진실성이 크게 부족했다. '한번에 섭취해도 괜찮은 양'이라고 하면서, 1,2세는 24.1개, 3~6세는 37.5개, 20~64세는 126.9개라고 발표했다. 얼핏 보면 매우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인 숫자의 제시가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예컨대 피리다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계란 555개를 먹어도 괜찮고, 에톡사졸은 매일 4000개씩 드셔도 무방하다는 식의 '섣부른 결론'을 발표했다. 도대체 어떤 패널을 대상으로 매일 수십개씩 계란을 먹여서 임상실험을 했는가? 그 근거는 아무데도 없어 보인다(네덜란드에서 유해하다는데 우리는 무해하다고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농약의 대부분은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 낸 화학 물질이다. 긴 시간을 두고 그것이 인체에 무슨 영향을 주는지 완벽하게 검증된 결과는 없다. 이런 물질들이 체내에 흡수돼 다른 물질과 결합해서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지 누구도 모른다. 화장품에 쓰는 미세한 플라스틱 가루가 북극에 사는 곰의 몸속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부로부터 지정된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 5곳의 대표를 농식품부 퇴직자들이 맡고 있고, 임직원으로 취업한 사례는 인증기관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농식품부 자료는 73개 친환경 인증업체중 35곳에 농식품부 퇴직공무원 85명이 취업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인증업체 사이에 슈퍼갑(甲)으로 불리는 국립농산물관리원 출신이 63명이었고, 농피아가 취업한 업체가 전국 인증 물량의 70%를 싹쓸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官)피아(정부 관리와 마피아를 합성한 콩글리시)-원래 옛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를 합쳐서 만든 모피아(Mofia)가 원조다-의 적폐는 농식품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부처가 현직에 있을 때 규제를 양산해 놓고 퇴직하면 산하기관에 가서 2모작(毛作)을 하고 있다. 산하기관에서 물러나면 감독하던 민간기업으로 가든가, 로펌(law firm)에 가서 자기가 일하던 관청을 상대로 로비스트가 된다. 인생 3모작을 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정년은 사실상 70세라고 한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부부가 다 공무원이면 '움직이는 중소기업'이라는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연말까지 9급 공무원 300명을 뽑는데 9만명이 몰렸다고 하니, 과연 '공무원 천국'답다. 그러나 공무원의 소득, 연금, 복지 혜택을 떠받치는 건 모두 국민 혈세(血稅)다.
"관피아의 먹이사슬은 갑을관계가 연쇄적으로 이어진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최정점에는 중앙정부 고위 퇴직관료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규모가 큰 공공기관, 민간협회, 금융회사 CEO를 차지한다.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자리를 나눠 먹는 먹이사슬 구조는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각종 조합, 협회, 공단까지 이어진다"(중앙, 2014. 4. 29).
이런 실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부는 일자리창출이란 명목으로 공무원을 11만명 더 늘리겠다고 한다. 소방, 사회복지, 경찰 등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은 정부, 깨끗한 정부"만이 '그리스로 가는 길'을 막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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