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정치부 차장
![[박미영 칼럼] 청와대의 큰 그림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2802102251798001[1].jpg "[박미영 칼럼] 청와대의 큰 그림자")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패싱'이지 싶다. 패싱 릴레이의 시작은 '코리아 패싱'이었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에 통화가 이뤄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중이어서 통화를 못했다는 이유로 보수 야당이 대통령을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로 공격했다.
이어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여당, 국회, 관료 등이 줄줄이 '패싱 프레임'에 갇혔는데, 이때부터 매번 '가해자'는 청와대였다. 바꿔 말하면 정책 추진이나 현안 논의·해결 과정에서 정작 주체가 돼야 할 대상들은 소외되고 청와대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국회에 출석한 장관이 "청와대에 의견(해임건)을 전했으나 그 결과는 무력함을 느낀다"고 했을까. 심지어 장관의 고견을 접했을 대통령 비서실장은 다음날 국회에서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 장관을 두둔조차 해주지 않았다.
어느 정권이나 청와대의 큰 그림자가 내각을 가리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캠페인 때부터 '큰 청와대'를 심심찮게 이야기해왔던 터라 예견된 일이기도 하지만 "새 정부는 청와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기찬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인수위 없이 출발한 정부인데다, 아직 정부 부처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은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된 이 시점부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통령의 통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통령 스스로 만든 내각이 약화되는 추세를 꽤 오래 전부터 우려했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정치학자 존 하트는 '워싱턴에서 클린턴까지'라는 저서에서 "내각 구성원들의 권위, 지위, 권한의 축소는 대통령보좌진의 힘이 커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학자 스티븐 헤스는 대통령 곁에 보좌진을 많이 두거나 또 다른 유형의 조직을 두면 대통령의 생각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의 참모진들은 대부분 대선때 선거 캠페인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선거 캠페인 팀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뛰어나지만 대부분 통치 능력은 부족하다. 그들은 국정 역시 선거 캠페인의 연장선으로 보는 듯하다. 정치와 여론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머지 대통령 조차도 영원한 캠페인에 빠져들게 할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담화에만 집착하고 높은 지지율의 덫에 걸려 관리형 대통령보다는 '수사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지난 20일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보고대회'가 메시지 과잉의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 백악관에는 '차르(czar)'라는 것이 있는데, 대통령의 의사 결정을 위해 정책 선택지를 검토하거나 관료들의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로 '에너지 차르' '인플레이션 차르' '경제 차르' 등으로 불렸다. 차르는 정책을 컨트롤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각 부처의 손을 묶어두는 결과를 낳았다. 딱 맞아 떨어지진 않지만 문 대통령에게는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김수현 사회수석, 'J노믹스'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이 차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일자리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을지로위원회, 국방개혁특별위원회 등 주요 정책마다 꾸려진 대통령 직속 위원회도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내각관료와 정책을 실제로 실행하는 이들의 권한이 축소되고 심지어 간섭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내각은 설 자리가 없어질게 뻔하고 정책 실행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모 의원이 "청와대 참모는 헌법 기관도 아니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일 뿐인데 장관도 국회도 심지어 국민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지나칠 만큼 대통령의 소통력과 이미지만 부각하면서 눈이 머는 태양(대통령)을 만들려고 한다"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눈이 먼 태양을 여럿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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