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근 기술발달에 대한 논의들이 난무하고 있다.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SNS 등에서 시작해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3D 프린팅,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블록체인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기술발달을 통틀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단순한 수사적 슬로건이 아닌 사회과학의 개념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논란거리이다. 그 변화가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 그 이전의 1-2-3차 산업혁명과는 얼마나 다른지, 왜 작금의 변화를 기술혁명이나 생산혁명, 정보혁명 등이 아니고 꼭 '산업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공학적 현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사회과학적 현상이다. 주로 기술과 사람의 대결을 논하지만 사실은 기술을 내세워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이 다투는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기술, 정보, 지식 등과 같은 변수들이 새로운 권력자원으로 부상하고, 이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성세력은 도태되며, 그 결과로 권력구조와 사회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새로운 경쟁의 출현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데 있어서 정책과 제도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정책과 제도로는 안 된다. 최근 부쩍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사회과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기술공학 분야에 비해 사회과학에 대한 정부의 R&D 예산 지원은, 그 규모가 크게 작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지원은 정부 R&D 예산의 0.43%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이 급변하는 국가적·사회적 문제에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사회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 확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됨은 물론이다. 연구의 현장에서도 중견연구자사업 등과 같은 사회과학 분야 풀뿌리 기초연구나 미래사회 예측과 사회문제 해결의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SSK(Social Science Korea) 사업 등에 대한 지원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오늘날의 변화가 훗날에 4차 산업혁명으로 기록될지는 미래의 시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역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미 유례없이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우리가 여태까지 알던 상식이 뒤집어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가능성마저도 거론된다. 이러한 와중에서 기술발달의 현란함에 흔들리지 않고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하는 사회질서의 변환을 제대로 읽어내는 균형 잡힌 사회과학적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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