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경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책임
![[발언대] 워킹맘, 그들에게 육아란 무엇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1708/2017081402101869607001[1].jpg "[발언대] 워킹맘, 그들에게 육아란 무엇인가")
어깨가 아파 눈을 떠 보니, 만세자세로 자고 있다. 결린 어깨를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빠져나온 이부자리 주변에 세 아이들이 전투적으로 밀집해 있다.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줘야한다는 모성과 비좁은 이불에서 찬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무의식적 몸부림에 밀려 잠결 만세를 11년째 외치는 것이다. 5년 전 아이들의 수면 독립보다는, 내 몸 하나 편히 자 보겠다는 큰 사심으로 2층 침대를 들였다. 하지만 수면 독립은커녕, 이불보다 더 좁은 슈퍼싱글 침대 1층에서 넷이 낑겨 잠들기 일쑤였고, 남편은 늘 어딘가에 본인 잠자리를 잘 마련한 채 숙면을 취하고 있다.
둘이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는 톡으로 다음 주 일정을 먼저 선점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퇴근 후 일정이 잦은 남편이 먼저 다음 주와 다음다음 주 일정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다음주 화요일 출장, 수요일 회식, 금요일은 워크샵이라고 톡을 보내면 선점한 날 퇴근 후 육아는 일정을 선점하지 못한 쪽이 전담해야 한다. 일정을 선점하지 못한 쪽에게 일이 생겼다면 아이들 맡길 곳을 물색하고 부탁하는 것도 일정을 선점하지 못한 쪽이 담당해야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며 매끼를 걱정한다. 초등학생인 첫째와 둘째의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출근시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기 위해 서두르는 막내는 제 아침꺼리를 싸 들고 나오는 편이다. 퇴근 후, 막내를 찾아 집에 오면 설거지가 잔뜩 쌓여 있다. 그저 잘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기저귀를 채우고 치우기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도 남편은 희미하다.
이런 웃픈 일화는 임신·출산·보육·학습으로 이어지는 워킹맘의 현실 중 애교 있는 일부의 일부일 뿐이다. 육아전쟁에 참전한 워킹맘은 양쪽에 쌓인 일을 어깨에 짊어진 채 직장과 집을 넘나드는 수륙양용 무적탱크다. 겪어보니 후진은 없고 전진만 있는 무적탱크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 자라더라.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선배 워킹맘들의 말에 위안으로 삼지만, 그 추억이 될 행복한 육아전쟁을 가장 가까운 육아동지인 부부가 공평하게 참전하면 어떨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거룩한 본능이다. 워킹맘에 대한 각종 출산·육아정책보다는 우리 주변의 가족, 동료 나아가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 및 실천이 우선이다. 기쁘고 경이롭지만, 재미없는 육아전쟁 속에서 부부가 정체성을 찾아 같이 성장해 가야 한다. 육아가 부부에게 자연스러운 의무이자 동등한 몫이 되어, 워킹맘을 위한 정책이 당연히 없는 현실을 꿈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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