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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 `소득주도성장`의 시치미 떼기

이규화 선임기자 

입력: 2017-07-30 18:00
[2017년 07월 31일자 22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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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경제통하기] `소득주도성장`의 시치미 떼기
이규화 선임기자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을 듣고 영 불편했다. 과문 탓인지 생소했다.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랬다. 이 말은 마치 학생들에게 성적을 올리려면 점수를 잘 받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점수가 성적이고 성적이 점수다. 동어반복이다. 말이 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리라고 해야 한다. 소득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산출물이지 투입물이 아니다. 산출을 높이려면 투입을 늘려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을 임금주도성장으로 바꿔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임금은 산출이지 투입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소득(임금)은 소비나 투자로 옮아갈 때 비로소 모멘텀을 갖는 투입이 된다.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 무슨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주장하는 사람들은 솔직해져야 한다. '소비 주도 성장'이라 해야 옳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소득이 소비보다 더 대중의 뇌리에 와 박히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주도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자 그 원인을 임금 격차에서 찾으며 본격적으로 주장됐다. 임금 인상을 통해 총수요를 늘리면 시장이 커지고 투자로 연결돼 경기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란 생각이었다. 총수요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이란 추억을 지닌 누벨 케인지안들이 주로 여기에 가담했으나 주류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2010년 전후로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마크 라브와 교수와 영국 킹스턴대 엥겔베르 스톡해머 교수 등이 이 주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유럽과 북미 어느 정부도 그들의 주장을 정책화하지 않았다. 임금주도성장이 허세라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임금주도성장을 소개한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청와대의 홍장표 경제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이다. 이들은 기업은 수익이 느는데 가계 소득은 정체됐다며 임금인상과 배당확대를 주장했다. 흔히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논란으로 박근혜 정부는 2014년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한 터였다. 그러나 기업 사내유보금을 막상 들여다보니 현금으로 쌓아놓은 게 아니었고 어떤 형태로든 재투자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법을 만들었더니 임금 인상보다는 주주 배당에 치중했다. 기업마다 형편도 다 달랐다. 임금을 인상할 기업은 전체 기업에서 0.1%도 되지 않았다. 소득을 임금이 아닌 수입 형태로 올리는 550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도 염두에 둬야 할 문제였다. 더군다나 임금 인상을 계속 주장하면 그러잖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용직과 임시직의 임금격차(5월 현재 각각 월 117만원, 192만원)는 더 벌어진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사람들이 들고 나온 것이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 대한 증세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이다. 세금을 더 거두고 소득분배를 강화함으로써 소비를 늘려 성장 연료로 쓰겠다는 생각이다. 발상은 그럴듯하나 전제가 틀렸다. 소득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 키는 '소득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증세는 투자와 소비로 쓰일 몫을 줄인다. 수요와 소비를 늘린다면서 이율배반적 행위를 하고 있다. 소득을 늘리려면 오히려 세금을 줄이고 기업과 가계는 더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임금(소득)을 올리려면 기업과 자영업자는 싸면서도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제공해 매출을 늘려야 한다. 소득의 단초는 생산인 것이다. 바로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선순환 사이클이다.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사이클의 고리 중 생산의 결과물인 소득을 뚝 떼어내 여기서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땀 흘려 일하는 것에는 시치미 딱 떼고 소득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쉽게 말한다.

지금은 대중에 영합할 게 아니라 땀을 요구해야 한다. 땀 흘리지 않고 쉬운 길만 갔던 베네수엘라를 보라. 거덜 났다. 이게 나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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