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래정치연구소장
![[시론] `공유 정치시스템`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1402102351607002[1].jpg "[시론] `공유 정치시스템` 필요하다")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후 3개월간 온 나라는 탄핵 소용돌이에 휩싸여 극심하게 분열됐다. 다행히도 탄핵 심판 선고가 일단락돼 그동안의 분열을 치유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가 정상화의 길을 모색하게 됐다.
탄핵의 직접적인 시발점은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은 정치에 의한 국민대표성의 실패에 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무능했고 이러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대표성의 위기'에 직면해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들은 이러한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왔고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오작동을 고치고자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산업화 시대의 인식과 관행이 아직도 뿌리 뽑히지 못했다. 이번 탄핵 사태는 권위주의 통치행태에 대한 과감한 결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대통령이 특정인의 사익을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과 정부와 재벌이 유착해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는 관행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 불법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정부가 재벌을 파트너로 경제발전을 주도하고 국가를 권위적으로 통치하는 산업화 시대의 '발전국가론 패러다임'의 완전한 종식을 맞게 된 것이다.
탄핵의 시작과 끝은 기성정치권에 대한 경고로 점철된다. 우리 국회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고 사법기관으로 가져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는 국회와 정당의 직무유기로 볼 수 있다. 촛불 민심은 최순실 사태를 유발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진영논리에 휘둘려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기성정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치가 대화와 타협보다는 싸움과 갈등에 익숙한 것이 아직도 권위주의 패러다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이 선고됐기에 촛불 민심이 이제는 정치권 전체로 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치권은 온갖 핑계를 대며 개혁에 미온적이었다. 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서민경제와 개혁입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조기대선이 실시되면서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에 매달려 입법 활동은 소홀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변한 것이 없다. 한동안 '국가 대개조'가 화두였지만 결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문제점이 다시 드러났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민은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원했는데 정치권은 갑론을박만 반복하고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와 같이 대통령선거의 승자가 모든 권력과 책임을 가져가는 정치구조를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 권력을 독식하는 것이 잠깐은 달콤하지만 무능과 책임에 따른 후폭풍 또한 엄청나다. 이번 탄핵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대통령과 정부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국가는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같이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동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통치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는 '공유의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헌법 개정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지만 코앞의 5월 대선 이전에는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개정은 정치권이 개혁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고 국민의 의사를 왜곡 없이 의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도입은 국회에서 단독으로 가능하다. 새로운 선거제도를 기반으로 정당들이 상호 협조하고 견제하는 정당경쟁시스템을 만들어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표성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대통령과 측근·친인척의 비리로 국민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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