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커닝`과 `아너코드`](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0902102251607002[1].jpg "[뉴스와 콩글리시] `커닝`과 `아너코드`")
한 사람의 일생은 어떻게 보면 시험의 연속이다. 우리나라처럼 고도경쟁사회에서 시험 점수는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각급 학교교실에서 치러지는 여러 가지 시험은 말할 것도 없고 대입고사, 각종 고시, 취직시험이 개인의 팔자를 결정한다. 아무리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목전에 닥친 시험을 피할 방법은 없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된 사회에서 인간은 '점수기계'가 돼가고 대학과직장과 인생이 서열화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커닝 사건은 종종 있었다.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리 시험을 보게 한다든가 옆의 사람의 답안지를 베낀다든가 시험지를 바꿔치기 하는 수법이 동원됐다. 발각되면 곤장 100대, 3년간 중노동, 유배 또는 영구 응시자격 박탈 등 엄한 처벌을 받았다. 취업과 유학에 유리하도록 학점을 후하게 주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나타난 것은 우리 대학의 오랜 병폐고 시험 시간의 커닝과 과제물의 베끼기와 짜집기 행위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서울대가 자연대학을 시작으로 명예 규율인 아너 코드(honor code)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아너 코드란 구성원들이 단체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준칙을 뜻한다(한국경제, 2017. 2. 14). 아너코드는 시험부정행위나 논문표절, 데이터 위·변조 등 학문의 정직성을 훼손하는 모든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맹세다. 아너 코드의 핵심은 감독 없는 시험이다. 각종 시험 때마다 별별 수법이 다 동원돼서 답안지를 보고 베끼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실 안의 책상이나 벽에 예상 문제의 답을 미리 써놓는다든지 커닝 페이퍼를 준비해오는 것은 고전적 수법에 속한다.
You're not allowed to look at answers - that's cheating(답을 보면 안됩니다 - 그건 커닝입니다). 커닝이란 말은 아주 옛날부터 쓰여서 우리말로 뿌리를 내렸지만 '교활하다'는 뜻을 가진 커닝(cunning)은 시험의 부정행위를 가리키지 않는다. '시험을 치를 때, 미리 준비해 온 답이나 남의 답지를 감독 몰래 보고 쓰거나 베낌'이라고 우리사전은 커닝을 풀이해 놓았지만, 진짜영어는 cheating이다. 선생님은 커닝하는 학생을 잡아냈다(The teacher caught a student cheating in the examination). 물론 치팅이 시험뿐 아니고 경마나 게임, 도박 등에서 속이는 것과 같은 사기와 기만행위도 가리킨다. 학생들 사이에서 커닝이란 의미로 cribbing이란 말도 쓴다. 커닝 페이퍼는 cheating clip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팅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My daughter-in-law is telling people that she is cheating on my son(며느리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 - Dear Annie 중에서
감독없는 시험을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너 코드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사관학교다. 육군사관학교는 1984년 이래 신입생도들에게 육사의 명예와 전통을 지키고 사관생도로서 자긍심과 명예심을 고양하기 위하여 매년 명예의식을 갖고 있다. 공사의 경우도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하고 있다. 1. 거짓말 하지 않는다. 2. 부정행위 하지 않는다. 3. 부당한 취득을 하지 않는다. 4. 위 사항 위반 행위를 묵인하지 않는다.
미국 대학의 아카데믹아너코드는 1736년 윌리엄&매리대학에서 처음 시작됐다. 교수진과 학생들이 전적으로 상호 신뢰할 수 있는 학문의 장을 만들기 위해 교칙의 준수뿐 아니라 윤리성의 확보, 무감독 시험의 시행을 도입했다. 윌리엄&매리 대학은 학교와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거짓말하거나 시험 부정행위를 하거나 또는 절도 행위를 함으로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임을 서약한다. '나는 대학의 정직과 책임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맹세한다.' 이건 텍사스 주립대학의 윤리규율이다.
서울대가 이제야 아너 코드를 도입한다니 만시지탄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었으면 지금까지 명예의 헌장을 외면해 왔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연구 실험 윤리가 중요한 자연대에 우선적으로 아너 코드를 마련하고 점차 다른 단과대로 확대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하지만 부정행위는 실험조작 외에도 논문표절, 짜집기. 통계조작 등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 서울대의 명예와 긍지를 위해 '전면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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