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디지털산책] 의료AI, 집단지성으로 준비해야](http://contents.dt.co.kr/images/201703/2017030302103851607001[1].jpg "[디지털산책] 의료AI, 집단지성으로 준비해야")
인공지능과 로보틱스에 의해 주도되는 4차 산업혁명은 앞으로 다가올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관련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기술이 이미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2011년 Web 3.0의 등장에 따라 제시되었던 Health 3.0의 개념은 ICBM(IoT, Cloud Computing, Big Data, Machine)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미 구시대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 촉발한 Always-Connected 상황에서 단순히 환자에게 의료인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Health 3.0은 이미 실현됐고 여기에 의료인공지능이 '훈수'를 두는 패턴이 시작되고 있다. 이런 환경은 전통적인 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명을 결정하는 암 치료의 결정을 인공지능에 맞길 것인지 아니면 10년 이상 해당 분야에 종사한 전문 의료진에게 맡길 것인지의 쉽지 않은 결정이다. 최근 국내에서 암의 진단 치료 계획수립에 왓슨을 도입한 병원들에서는 'Watson for oncology'가 제안한 치료 프로토콜을 주치의의 의견과 종합해 검토 제공해 의료실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의사와 인공지능의 계획이 전혀 다를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단순히 전문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자율성을 가지고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재의 의료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환자를 일차 진료하고 이를 전문의가 확정하는 방식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인공지능이 의료인을 완전히 대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개발보다 훨씬 긴 시간에 걸친 치밀한 검증과 보완을 거쳐야 할 것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수십 년의 기간 동안 개발돼 기술적으로는 완성됐지만 도입되지 못하는 이유는 운행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의 문제 때문이다. 의료인공지능도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율 주행 자동차 기술 단계와 같이 4단계에 걸친 검증과 인증을 필요로 한다.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 기술을 4단계로 분류했다(www.nhtsa.gov/technology-innovation/automated-vehicles). 0단계에서 특정 기능의 자동화 단계인 선택적 능동제어인 1단계,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처럼 기존의 자율주행 기술들이 통합되어 기능하는 통합적 능동제어 단계인 2단계, 3단계는 특정 상황에서만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제한적 자율주행 단계로,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이 단계에 속한다. 최고등급인 4단계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4단계의 실현도 가능한 상황이라 무인택시 사업이나 무인 트럭 등이 이미 등장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의 오류로 인한 사고인지를 판명하는 방법도 쉽지 않고 제조사와 소유자의 책임소재 문제도 골치 아픈 문제이다. 현재의 의료인공지능은 이에 따르면 1단계 정도에 불과해서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의료인이 책임을 지지만 4단계 자율형 의료인공지능에 의한 의료사고는 누가 책임질지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기술을 제외한 부분에 대한 성찰과 검토가 필요하지만 의료인공지능에는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 조차 확립되지 않았다. 2016년 초반 미국에서는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ouncil(NSTC)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규정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의료분야의 경우도 이와 같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포지티브 규제(법에 규정되지 않은 것은 시행할 수 없는 것)형태의 법집행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발 빠른 준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개발과 적용 과정에 매우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와 투자는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다. 정부, 산업계는 물론 이를 대비한 입법부와 사법부에서의 준비도 필요하다. 기술 개발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발생 가능한 사회-법률적인 문제를 대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의료인공지능에 대한 준비는 더욱 더 어렵다. 인공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미래사회는 단순히 편리한 유토피아를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이 통찰력을 가지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을 능가할 것이며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지식보다 높은 수준의 고민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고민을 통한 깊은 성찰과 미래를 바라보는 유연한 대비가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시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통찰력(Insight)과 영감(Inspiration), 그리고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을 구현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그래도 조금 남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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