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부작용 상황 따라 '천차만별'
어설픈 기준치 제한 소비자 혼란만 가중
어설픈 기준치 제한 소비자 혼란만 가중
![[이덕환의 과학세상] (590) 무관용 원칙](http://contents.dt.co.kr/images/201702/2017021502101076650001[1].jpg "[이덕환의 과학세상] (590) 무관용 원칙")
유아용 기저귀에 엄격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프랑스 소비자원의 어설픈 주장이 우리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린 아이들의 연약한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법적 기준치 이하의 독성 물질이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뜻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비자·기업·정부 모두에게 매우 난처한 주장이다.
고속도로에서는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운행하더라도 사고가 일어나고, 어른보다 어린아이가 훨씬 더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가 타고 있는 자동차의 고속도로 진입을 금지할 수는 없다. 유아용 카시트를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독성물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해놓은 기준치를 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불안과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무차별적인 무관용 원칙은 비현실적이다. 독성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화학물질도 잘못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고, 자칫하면 치명적인 독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땀을 많이 흘린 후에 마시는 물은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화학물질이라도 지나치게 오랜 기간 동안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어떤 화학물질을 독성이라고 경계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화학물질의 독성이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밀가루·땅콩·복숭아·새우·게는 안전하고 좋은 식품이다. 그런데 그런 식품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사람도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이나 땅콩 등에 들어있는 정체불명의 알러지 유발물질 때문이다. 그렇다고 글루텐을 독성물질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밀가루에서 반드시 글루텐을 제거하라고 우길 수도 없다. 나에게 독성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독성일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독성물질의 노출 방법에 따라 독성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서 호흡기와 눈은 독성물질에 가장 취약한 부위다. 멀쩡한 물질도 흡입하거나 눈에 들어가면 치명적인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피부는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상당한 강한 편이다. 치명적인 농약 성분이라도 피부에 닿는 양이 충분히 작은 경우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비자들이 의도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는 독성물질도 있다. 인체 발암성이 분명하게 확인된 술과 에탄올이 대표적인 경우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60만 명이 음주 때문에 사망한다. 그런데도 술을 독성물질이라고 경계하는 소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통적인 훈제 기술이나 직화구이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러나 벤조피렌과 같은 독성물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훈제나 직화구이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독성물질의 존재 여부와 양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분석에 사용하는 기기나 방법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ppm 수준의 분석법으로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ppb 수준으로 분석하면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모든 제품에 초고성능 첨단 분석법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검사에 필요한 노력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비자원이 '6000만 소비자'라는 월간지를 통해 밝힌 시험 결과는 무작정 믿을 것이 아니다. 기저귀와 독성물질이 모두 미국 기업과 관련된 것이다. 맹독성이라는 다이옥신은 미군이 월남전에서 사용했던 고엽제 때문에 유명해졌고, 치명적인 농약 성분이라는 글리포세이트도 미국의 농약회사의 제초제에 사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월간지가 특정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2종의 기저귀는 모두 프랑스 기업의 제품이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왠지 뒷맛이 깨끗하지 않다. 자칫 어린아이들의 안전은 빌미일 뿐이고, 사실은 미국의 극단적 국수주의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어설픈 반발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어차피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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