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플래카드`, 정치 막장드라마 끝내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612/2016120802102251607002[1].jpg "[뉴스와 콩글리시] `플래카드`, 정치 막장드라마 끝내나")
마침내 촛불이 횃불로 타오르고 있다. 지난 3일 박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제6차 촛불집회에는 단군 이래 최대 인파라고 할 수 있는 232만명이 서울을 위시한 전국 주요도시에 운집했고, 416개의 횃불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횃불 행진에는 3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도 담겨 있다. 정직하고 진솔하지 못한 대통령의 담화 시리즈에 성난 국민들의 함성은 청와대 100미터 앞에서 계속됐고, 그들의 구호는 "하야하라"- "탄핵하라"- "체포하라"-"구속하라"로 강도를 높이고 있다.
There were 416 torches to symbolize the date of the Sewol ferry disaster, which left more than 300 people missing or dead on April 16, 2014(416개의 횃불은 2014년 4월 16일 300명 이상이 실종 또는 사망한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Korea Herald, 2016.12.4.
나라가 누란지위(累卵之危)다. 알을 포개 놓은 듯한 매우 위태로운 형세인데 여야의 각 정파는 각기 다른 셈법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상주-의성을 지역구로 둔 김종태의원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를 "좌파 세력이 조직적으로 선동하는 집회이며, 좌파와 언론의 선동으로 이 지경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대통령을 비호하면서 "그만한 흠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3차 담화를 놓고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은 홍문종 의원이었다. 여당의 원내총무는 촛불시위를 홍위병이 이끄는 문화혁명이라고 매도했다. 이 와중에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미디어가 각종 의혹을 제기해서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맹목적인 추종자들이 경거망동하고 있다. 어느 여가수는 지난 29일 트위터에 박근혜 퇴진 운동을 두고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이라고 폄하했다. 작가 이문열은 "100만명이 나왔다고, 4500만명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면서 촛불 시위를 북한의 '아리랑축전'에 비유해서 분노를 사고 있다. 아리랑축전이 무엇인가. 북한 당국이 10만명 이상을 동원해서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며 북한의 혁명사를 소개하고 집권세력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하는 대규모 관제(官制)퍼레이드 아닌가. 또 사라졌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사모의 맞불 집회에 나타나서 "박근혜를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시위집회는 현대판 아고라다. 시위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하나는 주의주장을 쓴 팻말이나 플래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외치는 구호다. Protesters carried a banner reading "Arrest Park Guen-hye"(시위꾼들은 "박근혜 체포하라"고 쓴 대형 구호천을 들고 있었다). 대형천이나 판때기에 구호를 적어 양쪽 끝에서 두 사람이 잡고 행진할 때 사용하는 것을 banner라고 한다. 시위 시 손에 든 것을 picket이라고 알고 있지만 엉터리 영어다. picket은 "공장이나 빌딩입구에 서서 항의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가리키지, 손팻말을 뜻하지 않는다. picketing은 그런 행동을 말한다. 정리하면, 1) 공공장소에 걸어놓거나 손잡이가 붙어있어 데모 때 들고 행진하는 것은 플래카드(placard), 2) 행진 시 둘이서 양쪽 끝을 잡는 구호가 적힌 대형 천은 배너(banner), 3) picket은 손팻말이 아니고 공장 입구의 시위꾼을 가리킨다.
지금 나라의 위기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여당과 야당의 정쟁의 문제도 아니다. 원칙과 신뢰를 약속한 대통령이 반칙을 일삼고 국민을 배신한데 대한 단죄(斷罪)의 문제다. 대통령이 즉각 하야하든가 퇴진하면 "헌정이 중단"된다고 하는 주장에 국민은 동의할 수 없다. '질서있는 퇴진'을 위해 전권을 내려놓고 4월에 가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정파적 득실을 염두에 둔 시간표일 뿐이다.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제3자 뇌물수수 등 국정농단에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세월호 7시간 실종사건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이라면 즉각 퇴진하는 것이 옳다. 광장의 혁명이 이제 정치적 막장드라마의 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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