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정보미디어부장
![[김승룡 칼럼] `세계 최초` UHD 방송의 함정](http://contents.dt.co.kr/images/201610/2016103102102251614001[1].jpg "[김승룡 칼럼] `세계 최초` UHD 방송의 함정")
전쟁 후 선진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며 제조업이 급성장한 우리나라는 1980년대 말 유례 없는 경상수지 흑자와 이른바 '3저'(낮은 유가, 낮은 금리, 달러 약세)에 따른 경제 호황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1992년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세계 경영이 본격화하자, 1994년 이른바 '세계화 선언'을 하기 이른다. 1995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서고, 1996년엔 세계 29번째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이 되며 국가 위상이 높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1997년 너무 조급한 세계화 따라잡기, 금융시장 개방 등으로 IMF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는 한 순간에 고꾸라졌다.
요즘도 '세계 최초'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신경전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이 '세계 최초'를 큰 성과처럼 대외에 알렸던 시절은 '세계화 선언'이 있었던 그 시절부터다. 삼성전자의 '세계 최초 512Mb D램 개발' 등 우리 기업의 세계화는 '세계 최초' 타이틀과 함께 넘실넘실 물결치듯 뻗어 나갔다. 외환위기를 딛고 난 후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은 더 빛을 발했다.
지난 25일은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가입협정에 서명한지 꼭 20년 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996년 6585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7487억 달러로 거의 3배 커졌다. 수출 규모는 2014년 세계 6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 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7년 2만 달러대에 진입한 후 3만 달러의 벽을 10년째 넘지 못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으로 커졌지만, 기존 제조업 위주의 수출 산업 구조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못하면서 성장엔진이 멈췄다는 지적이다.
전후 60여년 간 우리 경제는 소위 남들보다 '빨리 빨리', 남들보다 '일찍'이라는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그 '빨리 빨리'의 저력이 이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젠 남보다 '일찍'이 아니라 남보다 '꼼꼼하게', '참신하게'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최근 '갤럭시노트7' 사태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에서 이기고, 세계 1위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애플 신제품보다 먼저 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제품 결함으로 판매분 약 300만대를 전량 폐기해야 하는 치명타를 입었다. 손실액만 7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노트7과 같은 실수가 우려되는 걸 하나 더 지목하고 싶다. 바로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방송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말 2017년 2월 수도권 지상파UHD 본방송 시작, 2021년 전국 UHD 방송 계획을 밝혔다. 내년 2월 본방송까진 고작 3개월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방송 전문가들은 물론 지상파 방송사 내부에서조차 내년 2월 본방송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정부는 UHD방송 표준으로 미국식(ATSC3.0)을 확정했지만, 이미 유럽식의 UHD TV가 100만대나 팔렸다. 이들이 내년 UHD방송을 보려면 별도 장치를 사야 한다. 지상파는 앞으로 나올 UHD TV에 안테나를 내장해줄 것을 삼성 등 제조사에 요청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가 서둘러 내년 2월 세계 최초 방송을 하겠다고 한 배경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과시하겠다는 조급함이 깔려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UHD 방송을 하겠다는 일본보다 먼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야 한다며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세계 최초도 좋지만 굳이 내년 2월 본방송을 서둘러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본방송 시기를 6개월에서 1년 가량 늦춰도 충분하고, 무엇보다 내실 있는 서비스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무조건 임기 내 성과 내기에 열중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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