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 · CT 등 100% 외산제품
교체부품·작업내역 알기어려워
병원, 비용 낮춘 사설업체 이용
서비스 질적 하락 가능성 높아
교체부품·작업내역 알기어려워
병원, 비용 낮춘 사설업체 이용
서비스 질적 하락 가능성 높아
■ 이슈분석 구멍난 의료기기 수리체계 (하)
2009년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 G사는 '정품' 논란으로 진통을 겪었다. 장비 1대당 월간 1000만원이 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유지보수 비용을 60% 수준으로 낮춘 사설 수리업체가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전까지 MRI 유지보수 시장은 제조사나 제조사 협력업체가 독과점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제3의 수리업체가 나타나 MRI 유지보수 비용에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하며 시장을 넓혀나가기 시작한 것.
G사 영업사원들은 고객인 병원에 사설 수리업체들은 중고 부품을 사용한다고 설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 후 G사 역시 MRI 유지보수 과정에서 자주 교체하는 '콜드헤드' 부품에 '재생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사 측은 재생품도 제조사가 품질을 보장한 정품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논란 이후 사설 수리업체는 G사 MRI 유지보수 시장의 약 10%를 가져갔다.
MRI나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등 고가 특수의료장비 유지보수 시장은 '정보 비대칭' 영역이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의료기기인 만큼 수리나 유지보수 서비스가 중요하지만, 사용자가 교체하는 부품이나 작업내역 등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카센터처럼 전적으로 수리 업체에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용도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특히 국내에서 쓰는 MRI와 CT는 100% 외산이다. 영상의학과에서 일하는 한 병원 관계자는 "장비를 쓰는 의사들도 따로 배우지 않는 이상 MRI와 CT의 기계적·소프트웨어적 구조를 알기 어렵다"며 "대당 10억원이 넘는 장비를 함부로 열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독과점과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장에 여러 업체가 참여해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80% 정도가 1∼2명이 운영하는 영세한 규모인 사설 수리업체가 대규모 인력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제조사와 경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 제조사들은 자사 엔지니어들에게 수시로 고급 기술과 서비스 교육을 제공하고 세계에 걸쳐있는 공급망을 통해 부품을 공급한다. 반면 사설 수리업체들은 제조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품도 공급받지 못해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다. 결국 사설 수리업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저렴한 비용밖에 없고, 이는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투명하고 저렴한 유지보수 서비스를 원하는 의료계와, 역량이 부족한 사설 수리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수리하는 걸 막으려는 제조사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영상의학과의원 의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 S사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S사가 MRI와 CT 장비를 판매하면서 보수작업용 소프트웨어(SW)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라이선스키)를 알려주지 않아 다른 사설 업체에 유지보수를 맡길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사는 이들 병원과 맺은 계약서에 '제공한 SW의 모든 권리는 S사에 있으며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었다. 병원에 SW '사용권'은 제공하지만, '소유권'은 S사에 있다는 의미다. 병원이 사설 수리업체와 계약을 맺으려면, 수리업체는 사전에 S사와 보수작업용 SW에 대한 유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공정위는 유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 사설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만큼 약관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S사가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계약 이행에 대한 문제지 약관 조항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영상의학과의원 의사들은 S사가 독점적으로 정비 사업을 하면서 과도한 수리를 하고 높은 부품 가격을 요구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한편 앞으로 민사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다.
S사가 암호 공개를 꺼리는 것은 SW 저작권 문제도 있지만, 자사 장비를 사설 수리업체가 손대는 것을 막기 위한 속내도 있다. 제조사들은 사설 수리업체가 부실한 유지보수를 하다가 의료사고 등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병원은 물론, 제조사에 피해가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기업체 한 관계자는 "사설 수리업체가 병원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지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땜질식으로 유지보수를 하다가 결국 심각한 고장이 생기면 결국 제조사에 수리를 맡긴다. 이럴 경우 수리비가 그동안 절감한 유지보수 비용보다 더 나온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2009년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 G사는 '정품' 논란으로 진통을 겪었다. 장비 1대당 월간 1000만원이 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유지보수 비용을 60% 수준으로 낮춘 사설 수리업체가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전까지 MRI 유지보수 시장은 제조사나 제조사 협력업체가 독과점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제3의 수리업체가 나타나 MRI 유지보수 비용에 거품이 끼었다고 주장하며 시장을 넓혀나가기 시작한 것.
G사 영업사원들은 고객인 병원에 사설 수리업체들은 중고 부품을 사용한다고 설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 후 G사 역시 MRI 유지보수 과정에서 자주 교체하는 '콜드헤드' 부품에 '재생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사 측은 재생품도 제조사가 품질을 보장한 정품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논란 이후 사설 수리업체는 G사 MRI 유지보수 시장의 약 10%를 가져갔다.
MRI나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 등 고가 특수의료장비 유지보수 시장은 '정보 비대칭' 영역이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의료기기인 만큼 수리나 유지보수 서비스가 중요하지만, 사용자가 교체하는 부품이나 작업내역 등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카센터처럼 전적으로 수리 업체에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용도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특히 국내에서 쓰는 MRI와 CT는 100% 외산이다. 영상의학과에서 일하는 한 병원 관계자는 "장비를 쓰는 의사들도 따로 배우지 않는 이상 MRI와 CT의 기계적·소프트웨어적 구조를 알기 어렵다"며 "대당 10억원이 넘는 장비를 함부로 열어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독과점과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장에 여러 업체가 참여해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80% 정도가 1∼2명이 운영하는 영세한 규모인 사설 수리업체가 대규모 인력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제조사와 경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 제조사들은 자사 엔지니어들에게 수시로 고급 기술과 서비스 교육을 제공하고 세계에 걸쳐있는 공급망을 통해 부품을 공급한다. 반면 사설 수리업체들은 제조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품도 공급받지 못해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다. 결국 사설 수리업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저렴한 비용밖에 없고, 이는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투명하고 저렴한 유지보수 서비스를 원하는 의료계와, 역량이 부족한 사설 수리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수리하는 걸 막으려는 제조사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영상의학과의원 의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 S사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S사가 MRI와 CT 장비를 판매하면서 보수작업용 소프트웨어(SW)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라이선스키)를 알려주지 않아 다른 사설 업체에 유지보수를 맡길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사는 이들 병원과 맺은 계약서에 '제공한 SW의 모든 권리는 S사에 있으며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었다. 병원에 SW '사용권'은 제공하지만, '소유권'은 S사에 있다는 의미다. 병원이 사설 수리업체와 계약을 맺으려면, 수리업체는 사전에 S사와 보수작업용 SW에 대한 유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공정위는 유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 사설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만큼 약관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S사가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계약 이행에 대한 문제지 약관 조항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영상의학과의원 의사들은 S사가 독점적으로 정비 사업을 하면서 과도한 수리를 하고 높은 부품 가격을 요구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한편 앞으로 민사소송도 진행할 계획이다.
S사가 암호 공개를 꺼리는 것은 SW 저작권 문제도 있지만, 자사 장비를 사설 수리업체가 손대는 것을 막기 위한 속내도 있다. 제조사들은 사설 수리업체가 부실한 유지보수를 하다가 의료사고 등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병원은 물론, 제조사에 피해가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기업체 한 관계자는 "사설 수리업체가 병원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지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땜질식으로 유지보수를 하다가 결국 심각한 고장이 생기면 결국 제조사에 수리를 맡긴다. 이럴 경우 수리비가 그동안 절감한 유지보수 비용보다 더 나온다"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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