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뉴스와 콩글리시] 병든 사회와 ‘힐링열풍’](http://contents.dt.co.kr/images/201606/2016060902102251607001[1].jpg "[뉴스와 콩글리시] 병든 사회와 ‘힐링열풍’")
지난 5월17일 서울 강남역에서 조현병(調絃病, schizophrenia)으로 여섯 차레나 입원한 적이 있는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조현병환자인 김모씨가 여성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망상 때문에 저지른 묻지마 범죄(random crime)로 결론을 내렸다(한경, 2016. 5. 28).
스키조프레니아-정신분열증이다. 말 행동 감정 인지 등 여러 분야에서 복합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질환 이름이다. 이 병에 걸리면 사람의 말소리와 같은 환청이 들리고 이러한 환청이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거나 욕을 하게 만들고 특정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또 없는 것이 보이는 환시, 없는 것이 만져지는 환촉 등 신체 착각 증세도 나타난다. 망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 증상으로 누가 나를 감시하거나 미행하고 있다고 믿든가 나를 도청하고 있으며 몰래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등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심하면 내 밥에 독약을 넣었다고 하는 예도 있다. 지난해 조현병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10만명이 넘었는데 의료계는 실제 환자의 수가 5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대한 하나의 정신병동이다. 그 반증의 하나가 힐링(healing) 열풍이다. 신문의 기사와 광고에 힐링은 가장 매력적인 소구점(訴求点)이 됐고, 텔레비전의 히트 프로그램 이름은 '힐링캠프'였다. <더 스타 휴는 자연 친환경 힐링 리조트로 골프장 이용혜택까지 누리는 게 특징이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여행, 명사와 함께 하는 한일 크루즈>,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향기까지 더해 한층 풍요로워지는 힐링 여행을 떠나자> 등 도처에 힐링이 대세다. 최근 동아일보는 <맑은 공기 마실 수 있는 서울도심 속의 힐링 공간이 시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며 숲속의 휴식을 '초록 힐링'으로 표현했다. 드디어 힐링도 색조를 띠기 시작했다.
<국내 4대 힐링 명소, 그곳에 가면> healing food까지 나온다고 하니 입원환자를 위한 치료식인가. <첨가물 빼고 영양 더하고… 힐링 푸드, 소비자 입맛 잡았다>(중앙일보, 2013. 12. 30)
거대한 정신병동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힐링 쇼핑몰에서 장을 보고 힐링 여행을 떠나, 힐링 리조트에서 자고 힐링 골프를 치고 힐링 공간에서 힐링 푸드를 먹으면서 힐링 talk를 한다. 많은 이들은 힐링 메이트와 힐링 스파를 하면서 힐링 음악을 듣고 힐링 타임도 갖고 싶은 모양이다.
힐링 열풍의 끝판왕은 아무래도 '힐빙'일 것 같다. "힐빙, healing과 wellbeing의 합성어다. 힐빙이란 치유를 통한 건강한 삶을 의미하는데 사회 전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한경, 2013. 5. 27). 힐빙, 기발하다!
또한 힐링에는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없다. <80세 노인도 20대 청년이 되는 곳:건강한 땅, 힐링의 섬 하이난>이란 광고는 세계 장수마을 청마이(澄邁)를 한 번 찾으면 10년이 젊어진다고 유혹하고 있다. 마침내 힐링은 섬과 바다, 관광지와 리조트를 지나 절간까지 접수했다. 월정사는 '힐링하는 수행 공간'이 된지 오래고 텃밭이나 한옥도 '나만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My burns were healed after six months(내 화상은 여섯 달 후에 나았다). His comfort healed my sorrow(그가 위로해 주어 내 슬픔이 사라졌다). 이처럼 heal 역시 병을 고친다는 뜻이지만, cure와 달리 절상(cut)이나 상처(wound)를 낫게 한다는 뜻이 강하다. healing은 heal의 명사형으로 치료, 치유, 회복인데 형용사로도 쓰인다. healing art(의술), healing power(치유능력)가 형용사적 용법의 예다.
서울대에는 '힐링 강의'까지 생긴다고 한다. <서울대생 자살 그만! 교수들 힐링 강의> 조선일보 기사다(2016. 5. 24). 행복이나 생명 같은 다소 철학적인 주제의 신규 강좌가 개설되는 것은 각종 스트레스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서울대생이 2012년 5550건에서 지난해 7122건으로 3년만에 28% 늘어난 탓이다. 이 중 97건이 자살과 관련된 것이었다.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조차 정신적으로 건강한 집단은 아닌 듯 싶다. 힐링 강의는 신문이 만들어낸 조어다. 끝없이 넘쳐나는 힐링열풍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인 '병든 사회'를 반영해 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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