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하기 힘든 금융현장… 일관성 있는 규제가 가장 중요"

작년 금융회사 435번 방문… 건의사항 3575건 중 46% 처리 '성과'
'옴부즈만' 설치 그림자규제 개선… 규제당국 역할 코치→심판 전환
정권 변해도 '네거티브 규제 · 자율책임 강조' 대원칙 흔들려선 안돼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예측하기 힘든 금융현장… 일관성 있는 규제가 가장 중요"

지난 2014년 1월, 1억400만건의 개인금융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상식적으로 금융회사들은 개인정보보호 조치를 강화하기 위해 즉각 총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하지만 대다수 금융회사는 이후로 1년 가까이 아무런 정보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진행하려던 개인정보보호 조치, 암호화 등 각종 보안 프로젝트나 투자를 일제히 중단시키는 금융회사마저 나왔다. 이유는 있었다. 정보유출 사태 조사를 위해 국회와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국정조사, 감사, 검사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국정조사와 검사가 끝나고 난 후에도 금융회사는 당국의 '지침'을 기다렸다. 정부는 그 해 '금융개인정보보호 종합대책', 국무조정실 중심의 '범정부개인정보보호종합대책', 행정자치부 중심의 '개인정보보호 정상화 대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각종 규제가 신설되고 감독 규정이 변했다. 가이드라인, 세부규정, 지침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에야 금융회사는 비로소 정보보호 조치를 시작했다.

국민의 개인정보를 소홀히 관리했던 금융회사의 태도도 문제지만 '어차피 규정이 변하면 새로 시스템을 갈아 엎어야 한다'는 인식이 금융회사에 뿌리 깊이 작용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정부나 당국의 규제에 일관성이 없고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널 뛰듯 규제가 변하면서 차라리 모든 지침이 발표되고 난 후 행동에 돌입하자는 의식이 만연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사고 때 만이 아니다. 금융 일선 현장에서는 "정권이 바뀌거나 당국의 수장이 교체됐을 때, 심지어 담당 과장만 바뀌어도 규제가 춤을 춘다"며 한숨을 내 쉰다.

■ DT 초대석 장범식 금융개혁추진위원장

"규제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현장을 옥죄는 강력한 규제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이랬다저랬다 춤을 추는 규제이지요. 지난해 금융개혁은 이전과는 달리 철저히 현장중심으로, 실천 가능한 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는 점이 특색입니다. 이 때문에 시장의 신뢰를 조금씩 얻어가는 상황이고요. 자본주의 금융의 역사가 짧은 우리 형편에서, 지난 60년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숭실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만난 장범식 금융개혁추진위원장(숭실대 부총장)은 금융개혁에 앞서 규제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1기 금융개혁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한해 진행된 금융개혁을 낱낱이 지켜본 전문가다. 또 2기 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동시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았다. 그런 그가 말하는 금융개혁의 성과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는 누구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디지털타임스는 창간 16주년과 금융개혁 1주년을 맞아 장 위원장과의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한민옥 금융증권부장

-지난해 금융개혁위원으로 활동하시고 올해는 금융개혁추진위원장 및 금융발전심의위원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소회를 밝히신다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기침체 등 최근 대외불안 요인과 함께,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 기업 실적 부진 등 우리 금융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상당히 도전적인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정책 자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금발심의 위원장과 금융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1단계 금융개혁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요.

"지난 해 금융개혁은 이전과는 달리 철저히 현장중심으로, 실천 가능한 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감독 당국의 검사제재개혁, 그림자규제 근절, 금융규제개혁을 추진한 부분 등이 대표적인데요. 3대 전략, 6대 핵심 과제, 18개 세부 과제 및 70개 실천 과제를 선정해 작업을 추진했습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무려 435차례의 현장 점검반 금융회사 방문이 이뤄졌으며 3575건의 건의사항을 접수하고 그중에서 46%에 해당하는 건의사항을 처리한 바 있습니다. 단순한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하는 개혁을 하려 했다는 것이 1기 금융개혁의 성과라고 볼 수 있겠죠. 단순히 숫자로만 나열하니 와 닿지 않겠지만, 금융개혁회의가 출범한 게 3월입니다. 이때부터 10개월동안 435번의 현장방문을 하고 일관되게 현장 애로를 청취했다는 것, 이 점이 금융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개혁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데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천과제 중심의 개혁이 오히려 지나치게 미시적인 부분으로 몰입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마치 당국이 금융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짜 주는 것처럼 돼 버렸다는 것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융개혁의 거대담론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만 놔두면 절대 바뀌지 않을, 그 누구도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 들지 않는 부분의 개혁은 마땅히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간의 금융개혁도 이런 주제 아래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담론 논의가 가지는 문제점은 주제의 특성상 모든 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관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시장 이해관계자의 다툼이 일면서 개혁이라는 본질은 실종되고 논쟁만 이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주제에 매몰되면 막상 금융회사나 수요자와는 동떨어지게 됩니다. 이게 그동안 시행된 금융개혁의 현주소입니다. 과거 97년에도 금융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됐었고 이때 도출했던 과제가 40개가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법안이나 현장 적용으로 현실화된 과제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현실이 된 것이 많습니다. 꾸준히 '실현 가능한, 현장 중심의' 개혁을 외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칫 개혁이란 미명 아래 여전히 금융소비자나 현장과는 동떨어진 논쟁만 이어가는 불찰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년의 활동 중에 아쉬운 점은 없으셨나요.

"지난 한 해 동안 이뤄진 개혁작업 가운데 최종적으로 입법추진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의 개정이 필요하며, 은행법 개정을 위시한 여러 입법추진 사항들이 있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입법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 금융산업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못하다, 이런 말이 있었지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단계 금융개혁에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금융산업의 발전은 실물시장보다도 오랜 시간을 요구합니다. 금융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주체 즉 금융회사, 금융시장과 금융소비자, 금융규제 감독 당국이 각기 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양측이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엔 삼성이나 현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있지요. 그럼에도 아직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금융산업 경쟁력이 실물 경제에 걸맞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융을 키우지 않고는 진정한 경제 강국이 될 수 없습니다. 유럽 경제의 중심인 독일이 아직도 미국보다 한 수 아래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독일의 금융이 미국보다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금융시장의 주체인 금융회사가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봅니다. 양질의 금융상품과 서비스 창출을 위해서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에 정부도 나름의 역할과 도움을 주겠다는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우위 확보입니다. 금융회사의 고유한 국내 경쟁력이 확보되어야만 해외진출에서의 성공도 담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금융업계의 변화와 혁신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2단계 금융개혁에서도 금융회사의 혁신을 이끌어 낼 '구체적인' 개혁이 진행되나요.

"물론입니다. 기존에 마련한 개혁과제를 시장에 확고히 안착시키고, 지난해 마무리 짓지 못한 과제들을 신규로 발굴해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국민의 편익을 위한 서비스들이 많이 출시되었다면, 올해는 기업들에 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입니다. 성과중심문화 확산,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 스튜어드쉽코드 등 금융권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적극 논의할 생각입니다. 서민금융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과제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추진할 겁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신다면.

"구체적으로 4대 전략, 12대 핵심과제, 36개 세부실천과제를 마련했습니다. 4대 전략은 △금융의 실물지원 기능(기술금융 확대/정착, 자본시장의 기업금융기능강화, 정책금융역할 강화) △국민의 금융편익 확산(새로운 금융서비스 확대: 계좌이동 서비스확대, 국민재산증식, 서민금융지원 확대, 소비자 보호 강화) △금융산업경쟁력 제고(핀테크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금융규제 개혁 지속) △자율책임 문화 정착(감독당국의 검사제재 혁신 등 감독방식 변화, 금융회사 변화: 성과중심 문화 확산, 금융회사지배구조 개선,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입니다. 2단계 금융개혁을 차질없이 추진 하기 위해 현장중심 체감도를 제고하는 방식을 올해도 이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 주도의 금융개혁이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염려도 있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 약화에도 일조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장 개입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두 가지 천명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 영업행위 근간인 수수료와 금리체계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말을 오히려 금융회사와 시장, 언론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당국의 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개입 없이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수수료 자율화에 따른 일시적인 인상 같은 미시적인 부작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금융 소비자의 냉정한 판단이 뒤따를 겁니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해외에서도 이길 수 있는 겁니다."

-당국의 규제 개혁도 관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네거티브 규제로 대전환하고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겠다는 것인데요.

"앞서 과거 60년간 가장 혁신적인 금융개혁이 이뤄졌다고 평가한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금융당국 스스로 손발을 묶어서 감독과 규제의 획기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경쟁을 저해했다고 생각했던 감독규제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역할을 코치에서 심판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지요. 금융감독원의 검사/제재 방식을 개혁하고, 소위 그림자규제라고 불리는 비공식 행정규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증거입니다. 세계 어느 국가, 역대 어느 정부에서 금융규제 운영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규제 당국이 스스로를 '규제'하고 있습니까. 금융규제 운영에 관한 규정은 매우 의미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규제 당국을 규제'하겠다는 방향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금융 옴부즈만까지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국 스스로에게 이중, 삼중의 족쇄를 채운 셈이죠. 과도한 시장개입을 자제하고 감독방식을 개선/개혁함으로써, 시장 참여자인 금융회사의 자생력을 키우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 위원장이 계실 때나 현 당국 수장이 있을 때는 이런 개혁 방향이 제대로 유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총선, 대선이 잇따라 있고 혹시 정권이 바뀌거나 수장이 교체되는 일이 발생하면 그때도 금융개혁의 방향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전 정부의 정책을 일단 부인하고 새로이 정책을 하려는 모양새는 많이 봤어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 발전하려는 모습은 본 기억이 거의 없어 우려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금융 개혁이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규제를 강화하든, 완화하든, 사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규제의 일관성'입니다.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면 규제가 강해서, 까다로워서 힘든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규제의 대원칙, 개혁의 중심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이래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입니다. 금융업을 하려면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소위 '피보다 진한' 돈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해진 룰은 마땅히 필요합니다. 사고가 있을 수 있고 일부 일탈행위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룰이 변하면 시장 전체가 혼돈에 빠집니다. 일탈 행위는 제재를 통해 응징해야 하는 것이지, 시장의 대원칙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이번 금융개혁에선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자율과 책임 강조라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정권이 바뀌어도, 책임자가 교체돼도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 금융규제 운영에 관한 규칙이나 옴부즈만 등을 신설한 것입니다."

-올 한해 개인적으로 가장 이루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국은 이미 수출규모로 볼 때도 2015년 기준 세계 6위입니다. 자본시장의 경우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14위이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그 규모는 너무나 미약한 상황입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저는 금융개혁회의 위원으로도 참석해 떨리고 감동하는 마음으로 금융당국의 개혁 추진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올해는 실물경제에 걸맞은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놓는 심정으로 제가 맡은 역할과 업무에 임하고 싶습니다."

정리=강은성기자 esther@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예측하기 힘든 금융현장… 일관성 있는 규제가 가장 중요"

◇ 장범식 위원장은

◇ 출생

- 1957년생

◇ 학력

~ 198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

~ 198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경영학 석사

~ 1993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 경영학 박사

◇ 주요 경력

- 1995년 ~ 현재 숭실대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

- 2000년~2003년 코스닥위원회 위원

- 2005년 2월~ 현재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

- 2008년 3월~2009년 2월 한국증권학회 제25대 회장

- 2014년 11월~ 현재 숭실대 학사부총장

- 2016년 1월~ 현재 금융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6년 1월~ 현재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