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미드럭셔리 시장판매 3위 기염
토요타 '렉서스' · 닛산 '인피니티'와 경쟁
'인간 중심의 진보' 비전 …향후 행보 주목
토요타 '렉서스' · 닛산 '인피니티'와 경쟁
'인간 중심의 진보' 비전 …향후 행보 주목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쌓아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견고히 하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난 4일 이례적으로 공식 석상에 올라와 한 말이다. 이날 현대차는 독립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을 직접 알리며 독일과 일본 업체의 독무대인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던졌다.
2008년 현대차의 고급차종 중 하나로 첫선을 보인 제네시스는 이제 하나의 차종을 넘어 브랜드로 변모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쳐 유산을 쌓아온 BMW나 벤츠 등 경쟁 브랜드에 비해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제네시스의 엠블럼은 아직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
제네시스의 경쟁 상대이자 롤모델로는 렉서스와 인피니티를 꼽을 수 있다. 두 일본 브랜드 모두 1980년대 후반 미국의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출범한 이후 유수의 유럽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현대차와 제네시스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1989년 탄생한 렉서스는 편안함과 정숙성을, 인피니티는 힘과 역동성을 각각 강조하며 자신들의 모태인 토요타, 닛산과 차별을 두었다. 최근에는 두 브랜드 모두 하이브리드차를 적극적으로 출시하면서 친환경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고 있다.
렉서스는 첫 미국 진출 당시 신흥 부유층인 보보스족을 마케팅 대상으로 잡았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섬세함, 동급 모델과 비교해 저렴한 가격 등을 앞세워 렉서스의 첫 차량인 LS400을 선보였고, 렉서스는 미국 진출 2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고급차에 올랐다. 특히 LS400은 당시 독일 고급차들이 품질은 뛰어나지만. 잔고장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과 달리 낮은 고장률을 자랑하면서 이 틈을 제대로 파고들었다.인피니티는 렉서스와는 다르게 달리기 성능을 강조하면서 독일 브랜드와 정면 대결을 펼쳤다. 인피니티는 로고부터 수학적 개념의 무한대(Infinity)에서 출발해서 무한을 의미하는 수학 기호를 변형하는 발상과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직선의 고속도로를 상징하는 도안을 접목해 완성한 것으로 주행성능에 초점을 맞췄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초기 안착에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브랜드 홍보를 위한 광고 전략에서 차를 강조하지 않고 동양의 선사상을 바탕으로 한 자연합일의 이미지를 만들어 차별화를 노렸으나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던 것이 실패의 요인으로 꼽힌다. 후에 전략을 수정하고 더욱 구체적으로 모델을 홍보하고 각종 품질 평가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으면서 현재까지 성장하고 있다.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출범의 야심 찬 계획은 이보다 10년 뒤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드네임 'LZ'로 불리던 현대차의 첫 고급세단 에쿠스의 탄생이 그것이다. 어디에도 현대차의 엠블럼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차는 사실상 현대차의 신규 브랜드 전략을 고스란히 담은 첫 번째 시도다.
에쿠스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미쓰비시에서 들여온 V8 엔진의 잦은 결함에 발목이 잡혔고, 주 무대인 미국에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이 2000년대 초 별도 브랜드 없이 페이톤이라는 고급차 하나로 북미 시장에 진출하자, 현대차는 전략을 수정해 에쿠스를 하나의 차종으로만 분류해 판매했다. 이어 2004년 제네시스 개발을 착수했고 2008년 1세대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도 차별화한 엠블럼을 채택하면서 또다시 고급 브랜드화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시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고급차 시장이 위축된 데다 복수 제품군 확보와 내부기준 충족 등이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인해 결국 별도 브랜드화를 보류한 채 차명으로만 사용하게 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제는 때가 됐다'는 게 현대차와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선두권에 올랐고, 지난해 고급차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미국 시장에서 1만9146대가 팔리며 아우디 A6, 렉서스 GS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미국 미드(Mid) 럭셔리 시장 판매 3위를 차지했다.
중요한 것은 제네시스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소비자에게 투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렉서스가 정숙성을, 인피니티가 역동성을 차별화 전략으로 제시했듯이 말이다. 출발점에 선 "제네시스는 '인간 중심의 진보(Human-centered Luxury)'를 지향한다"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정했다. 디자인부터 미래 자율주행 기술의 탑재까지, 모든 요소를 사람을 중심에 두고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밝힌 제네시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노재웅기자 ripbird@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